봄비가 내리고 공기가 맑아진 하늘이 청명하다.
아침저녘으로 쌀쌀하지만 한낮으로는 따듯한 햇볕이
유리창가득 쏟아진다.
반질반질 장독대 장 단지들이 따듯한 햇살에 온몸을
데우고 멀겋던 장물이 색깔을 내기시작하더니 달큼한
냄새가 난다.
장이익는 냄새 꾸리꾸리한 장냄새가 구수하게 느껴지는
살림쟁이는 장이 잘 익어야 행복하다.
해가 갈수록 날씨가 따듯해져서 장도 빨리 익는다.
올해는 메주 세 덩이를 다넣기는 많고 남기기도 그렇고
해서 무리해 세덩이를 다 띄웠더니 소금물의 농도가 조금
낮아졌는지 뽀글뽀글 공기 방울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며칠 공기방울을 떠내고 일찍 뚜껑을 열여 늦게까지 바람을
쏘이며 장맛을 본다.
간간 짭짤 달큼하니 잘 익었다.
오늘 날씨도 좋으니 장을 가르기로한다.
장물에 띄웠던 숯이며 대추 고추를 건져내고 메주를 건져내
간장물을 거른다.
색깔 참 이쁘다.
맑게 우러난 적갈색 간장색은 몇십년 오크통속에서 오크진액이
우러난 위스키색 보다 훨씬 더 이쁘다.
간장을 찍어먹으며 메주릉 으깨어 콩을 씹으며 발코니와 거실
부엌을 오가며 신바람을 내는데 엇저녘부터 컴앞에서 과제와
씨름하는 딸램이 " 이거 무슨 냄새야?' "응 오늘 장 가른다."
날밤을 새운 딸램은 무릎담요를 뒤집어쓴채 안그래도 추워 죽겠는데
문도 못열겠구만 다른날에하지 컴은 왜리렇게 느린거야 구려죽겠다며
잔뜩 독이 올라 까칠하게 깽깽거린다.
'으이구 깐숙이 된장찌개는 아무리먹어도 안질리다고 할때는 언제고
구시헌 이냄새가 꾸리다고 깽깽대냐'
간장을 팍팍 닳였으면 좋겠는데 딸숙이 때문에 그냥 독에 부었다.
올해는 농축하지않은 생꿀처럼 닳이지 않은 생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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