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처럼 바람처럼

엄니의 영원한 짝사랑

두레미 2023. 1. 5. 12:06

엄니의  영원한 짝사랑


열아홉 숫처녀가 얼굴 한번 본적 없는 서른 한살 노총각에게 외할아버지의 손에 끌려 시집을 왔다고 합니다.
외할아버지께서는 돌을 쪼는 석수장이셨답니다.
손에 정 하나 들고 좋은 돌을 찾아 다니셨다는군요.
유람하듯 돌을 찾아 다니시다 날이 저물면 동네에서 쉬어가고 동네 마실꾼들과 어울리시며 좋은 돌이 있는곳의  정보를 얻으셨겠지요.
그러다가 만난 노총각을 맘에 두었다가 딸과 띠동갑인 노총각과 연을 맺어 주셨답니다.

그 시절 도망갈 줄도 모르고 아버지 손에 끌려와 한 평생을 사신 산골 처녀의 이야기는 자식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구전 소설이 되었습니다.

말수 적고 용하디 용한(착하디 착한) 노총각이 별 재미는 없었지만 착하고 성실해서 살았답니다.

열아홉에 시집와 스물에 첫 아들을 낳으시고 이어 줄줄이 일곱 남매를 낳아 훌륭하게 기르셨습니다.
우리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소설같은 얘기이며 엄니의 인생 이야기 입니다.

너무나 많은 우여곡절을 이겨 내시느라 힘드셨을 엄니는 안락할것 같던 노후가 오히려 견디기 힘든 외로움이었나 봅니다.
삶을 지탱하시던 의무감에서 해방되면 행복하고 여유로울줄 알았던 노후가 오히려 불안과 외로움의 늪 같았나 봅니다.ㅠㅠ

지긋지긋 하던 젊은시절의 고생이 그리움이고 행복이었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움은 병이 되어 단기 기억 장애로 현실을 자꾸만 망각 하시면서도 힘들었던 지난 기억은 불쑥불쑥 현실이 되어 나타납니다.

자식들을 잊지 않으려고 이름을 외우고 또 외우시고 지난 추억을 이야기하시고 또 하십니다.
자식들 하나하나 한 뱃속에서 나왔어도 다 다른 성격과 행동 패턴을 기억하시며 하나 하나 얘기를 하십니다.
얘기를 듣던 남편

은미는 어때요? 장모님.

은미?
어릴때는 치맛꼬리에서 찬바람이 쌩쌩 났지.
우리 은미는 버릴것 하나도 없는  사람여.
이것봐.  김 구워서 싸온것좀 봐.
알뜰 주부여. 알뜰 주부.  ㅋㅋ

그럼 형님은 어뗘요?

우리 아들?
우리 아들은 기븐 돼지.

기븐돼지?
기븐 돼지가 무슨 뜻이예요?
기븐돼지  기븐돼지?
귀여운 돼지라는 말씀이셔요?

응 기븐돼지여.

ㅍㅎㅎㅎㅎㅎ

왜 웃어?

아녀요.
늙어 꼬부라져도 장모님께는 기븐돼지 맞어요.

맏아들은  엄니의 영원한 짝사랑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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