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새해 첫 전화를 했다.
"엄마 제가 벌써 이십대 중반이라는게 실감 안나요."
"왜~ 마음의 무게가 느껴지냐?
이누~ㅁ 아야 아빠엄마는 오십대 중반이다 임마야~
세월 참 빠르지. 이젠 이십대 중반 제대 하고 나면 어른 대접에
어깨에 무게감이 느껴질거여.
자기 자신을 정맆하는 마음의 준비를 차근차근 해야 할것이다.
상급이 될 수록 책임감이 더 무거워지듯이 나이가 들 수록 확실한
자기 자신을 만들 수 있도록 더 자중하고 노력 해야 된다,
맡은 임무 잘 하고 항상 건강에 신경쓰고 휴가 나오면 보자꾸나."
그렇게 아들은 9일날 4박5일 포상 휴가를 나왔다.
그날 오후에 우리는 시누이의 아들 결혼식에 온 가족이 참석하였다.
사랑과 믿음으로 맺어진 부부.
그들의 사랑이 어떠한 고난과 역경에도 흔들림이 없기를
굳은 약속이 오래오래 지켜지기를 기원한다.
밝고 쾌활한 낭만을 즐길 줄 아는 신부와
신부의 말대로 온유하고 부드러운 여간해선 화를 내지 않는
약간은 보수적인 신랑.
잘 어울리는 한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말처럼 믿고 의지하며 지금까지 받아왔던 사랑을
앞으로 베풀며 살 수 있는 큰 축복이 내리기를 기원한다.
사촌의 결혼식을 보고 집으로 돌아와 컴 앞에 앉아 영화삼매경에 빠져있는 아들.
꿈에도 그리던 달콤한 시간이리라.
유난히도 추운 올해 겨울 아들의 입영을 앞둔 동생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매일 전화를 해대며 발등에 떨어진 불덩이 털어내듯 불안한 마음을 토로하더니
제일 춥던날 12일날에 춘천의 102보충대 입영식을 하고와서는 밤새 눈물로 지샜단다.
"언니 우리나라에서 아들 낳을게 아니네. 이렇게 마음이 쓰리고 아플 줄 몰랐어."
"그래 지나고 나면 쓰리고 아픈것도 추억이더라. 흘러가는 과정이지."
13일날 올 겨울 가장 추운날 아들은 귀대를 했다.
동서울 터미널 양구행 버스에 오르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고 돌아서도 이제는
마음 잠잠하게 또박또박한 발걸음으로 횡단보도를 건너 전철 계단을 올랐다.
새해 첫날 올해도 고향 친구들의 모임에 참석했다.
휠체어를 탄채 듬직한 모습으로 친구들의 중심을 잡고 있는
거북이 친구의 음력 생일이 새해 첫날과 겹쳐져 생일축하를 겸했다.
고향을 지키는 농부도 박사님도 교수님도 있고 평범한 선생님도 있고
나같이 평범한 주부도있고 사장님도 있고 ~
훈장같은 주름살을 마주하며 삶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손을 허물없이
마주 잡을 수 있는 고향 친구들은 지금도 만나면 어린시절의 추억담에
마음을 누그러 뜨린다.
저마다 자신의 힘들고 어려운 역경들을 딛고 살아가는 한때에 친구들에게서
잠시나마 위안받고 위안이되며 서로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친구들.
내 마음의 위안이기도 하고 이유없는 미안함이기도 하다.
이렇게 2010년도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