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처럼 바람처럼

아버지의 노동

두레미 2008. 6. 10. 10:35

언제나 온화하고 조용하고 보일듯말듯한 미소

큰소리로 말하는것을 들어본기억이없는 아버지.

너털웃음을 웃지는않았지만 빙긋이 비치는 웃음은 행복해보였다.

농사가 얼마되지 않았지만 품앗이로 일을하시고 품삯을 아끼기위해 이른

아침부터 저녘늦게까지 김을매셨다.

왜소하리만치 작고 가냘픈 몸으로 무거운 지게를 지고 걸을때면

가느다란 아버지다리는 휘청휘청 등짐이 함께춤을 추었다.

내가 국민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아버지를 도와 드리고싶어 지게짐을

지겠다고하자 아버지께서 빙긋이 웃으시며

"아서라 일이라는것은 힘으로 하는것이아니란다.

요령이 있어야 힘들이지않고 할 수있는것이란다."

나는 아버지 따라다니기를 좋아했고 아버지께서도 기꺼이 데리고 다니셨다.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풀이름도 배우고 곤층이름도배우고 물꼬밑에생긴

웅덩이에서 깜깜해질때까지 고무신과 바께스로 물을퍼내며 붕어도잡고  

강으로 흘러드는 샛강에서 참게도 잡고 내가 어린시절 아버지와 함께했던

추억은 은하수의 별보다 더 많은것같다.

김을매는법 낫질하는법 삽질하는법 각 농작물마다의 특성을 배우고 아버지가

하시는모든것을 따라하고 배우고싶어했고 아버지는 기꺼이 가르처주셨다.

나는 아버지를 따라하는것이 재미있고 즐거웠다.

아버지처럼 잘 하고싶어서 열심히 아버지를 따라했고 아버지는 칭찬을 아끼지않으셨다. 

아버지께 꾸중을 들어본 기억이없다.

그것은 지금도 나에게 유옹한 생활의 지혜이고 생활물리학이다.

내가 6학년이되고 중학교갈 아이들은 시험공부를 해야했다.

전기불이 없던 시골에서 석유불에 밤늦게까지 시험공부를 시켰다.

어린나는 아버지를 도와 농사를 하고싶었다.

농사일이 재미있기도하고 집안형편상 줄줄이 학교를 간다면 아버지 혼자

감당하시기가 힘들것같았다.

그래서 시험공부를 포기하고 진학을 포기했었다.

그시절 가뭄과 홍수가 해갈이하듯 하던시절 아버지께서도 더이상은 말씀이 없으셨다.

그러자 학교 선생님께서 날마다 나를 불러놓고 설득을 하셨다.

네 마음은 알지만 그것이 효도가아니란다 공부를 해야 더 큰 효도를 할 수 있단다.

그다음은 아버지를 부르셨다. 아버지께서는 흔쾌히 허락을 하셨고 나는 늦게늦게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어려서 서울로올라가 자수성가하셨다는 아버지 외사촌 아저씨께서

일년에 두어차례 꼭 방문을 하셨는데 그아저씨는 아버지께 항상 말씀하셨었다.

"ㅇ구 자네 죽 한그릇 먹을 수있으면 반그릇 먹고 자식교육은 꼭 해야허네."

어찌어찌해서 나는 여러사람들의 관심과도움으로 중학교를 가게됐다.

아버지는 딸덕에 더 무거운 등짐을 지셔야했고 그무게만큼 내 마음도 무거워졌다.

감당하기 힘들만큼의 노동에도 늘 온화하고 편안하셨던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은

이해가간다.

자식을 사랑한다는것 키운다는것은 행복한일이다.

아무리 힘든일일지라도.

자리를 보전하고 누워계시던 아버지께서는 딸과 마주앉아 옛날 이야기를 할때면

얼굴에 생기가 돌고 행복한 얼굴을 하셨었다.

아름답고 거룩하고 숭고한 아버지의 노동,

그것이 아버지의 일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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