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처럼 바람처럼

장자의 철학 우화

두레미 2021. 3. 28.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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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재유(在宥> 편의 인물들


세상을 그대로 가만히 두라


하늘의 부름에 따라 세상을 다스린다는 사람도 있었고 국민의 여망에 따라 세상을 다스린다는 사람도 있다. 옛날 사람들은 하늘을 믿었다. 그래서 옛날에는 세상을 다스릴 욕심을 간직한 이는 하늘을 팔았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은 인간을 믿기에 치자가 되려고 야심을 간직한 이는 국민을 판다. 요즘 치자들이 하늘을 국민으로 말바꿈을 하고 있지만 치자의 야심이나 그 욕심의 질은 달라진 바가 없다. <재유>편의 우화는 이러한 곡절을 이야기로 들려준다.
재유(在宥)란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가만히 놓아 두라는 말이다. 재유는 세상을 다스린다[治天下]고 함을 용인하질 않는다. 본래 다스림[治]이란 다스리는 자가 자신이 원하는 틀에다 세상의 사람들을 집어 넣어 다룬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동물원으로 끌려온 원숭이는 아무리 고향을 그리워 해도 갈 수가 없다. 철망이 있는 까닭이다. 원숭이를 가둔 철망은 눈에 보이지만 인간을 가두는 치(治)라는 철망은 눈에 보이질 않는다. 동물원의 짐승은 눈에 보이는 철망으로 재유를 빼았겼고, 문물제도라는 울 안에 갇힌 인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망으로 재유를 빼앗겼다.
치자는 항상 세상을 잘 다스려 온 사람을 행복하게 하겠노라고 장담을 한다. 그러나 마음편한 행복을 누린 세상은 한번도 없었다. 어느 시대나 치자들의 정치놀음에 걸려들고 말았지 치자가 백성의 아픈 곳을 찾아 고쳐준다거나 간지러운 곳을 찾아 긁어준다는 약속만 했을 뿐 약속대로 지켜 준 적이 있었던가. 왜 치자들은 약속만 근사하게 하고 뒤에는 오리발을 내 놓을까? 처음부터 되지 못할 약속을 남발한 까닭이다. 어찌 인위 따위로 만물을 편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오직 묶어서 법망의 틀 속에 집어 넣고 이렇게 하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벌을 받는다고 윽박질러 세상을 억지로 끌고 가는 것을 치자들은 질서라고 한다.
법으로 다스리는 질서를 이제 인간은 피할수가 없다. 재유의 우화는 그러한 질서를 새로이 생각해 보게 한다. 그렇게 하여 치자란 믿을 것이 못되고 항상 지켜야 하는 걸림돌 정도로 여기게 하면서, 이 우화는 인간인 내 스스로 내면의 자유를 찾아 노닐 수 있는 비밀을 가르켜 준다. 장자가 아무리 무위로 돌아가라고 타이르지만 우리 인간은 인위의 덫에 걸린지 너무 오래 되어 벗어날 길이 없다. 그러나 장자의 말을 들으면 가장 현명한 약물을 내 마음이 마실 수가 있다.
마음이 재유의 우화를 새겨 들으면 시시각각 일어나는 분통터지는 일로 올라간 혈압을 내릴 수가 있을 것이다. 원한에 사무친 한을 술술 풀어버리고 용서해줄 수 있는 큰 그릇 같은 도량을 얻게도 된다. 비참하고 암담한 절망에 빠져 있는 마음이라면 돌담 밑에서 햇볕을 고마워하는 풀잎의 속마음을 읽게 된다. 사랑을 안았던 마음이 그것을 잃었다고 증오의 불길로 복수심에 가득하다면 그러한 불길은 물로도 끌 수가 없을 게다. 이열치열로 마음의 불길은 곧 마음이 꺼야 한다. 미워하는 마음을 용서하는 마음으로 돌려 놓기 위하여 장자는 아마도 재유 같은 우화를 만든 모양이다.
유에서는 요순시대를 태평성대라고 칭송한다. 그 시대에 과오가 없었단 말인가? 요임금이 유가의 말대로 완전한 성군인가? 장자는 그렇지 않은 고사를 열거하면서 이야기를 한다. 인간이 인간을 다스릴 수 없음에도 있다고 말하는 것이 가장 무서운 지혜인 것이다. 이러한 지혜는 인간이 만든 것이므로 인간은 세상에서 스스로 만든 수갑으로 제 손을 묶고 끌려 가는 꼴이다. 그러나 인간의 세상에서 치자들이 인간의 몸을 묶어둘 수는 있지만 마음까지 송두리째 묶어서 매어둘 수는 없다. 마음이 갖는 자유, 그것이 바로 무위로 향하는 길일 수 있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라. 잘 한다는 짓이 혹 떼려다 혹을 붙이는 꼴이 되어 낭패만 당하게 되는 인간의 짓들은 모두 인위가 만들어 준 악연일 수가 있다. 세상이 요모조모 꽉 조이는 세상일수록 마음이 스스로 마음을 묶고 있는 족쇄를 푸는 방법을 알아 둔다면 눈치가 밝고 빨라야 사는 세상에서도 하늘을 나는 새처럼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자유, 그것이 바로 재유이다. 무위란 무엇인가? 자연대로 하라 함이고 재유는 그 실천의 길이 되는 셈이다.



( 1 ) 노담(老聃)을 뵙는 최구(崔瞿)


노담은《노자(老子)》를 쓴 분이다. 최구가 그를 만났다. 최구는 누군지 알 길이 없다. 최구가 노담의 제자란 말도 있지만 어쩌면 그는 장자가 만든 인물로 보아도 될 게다. 최구가 노담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이야기는 만들어진 우화인 까닭이다.
"세상을 다스리질 않는다면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이 좋아지겠습니까?" 이렇게 최구는 노담에게 물었다. 아마도 최구는 사람의 마음을 좋게 하려면 세상을다스려야 한다는 말로도 들린다. 공자라면 그렇다고 했을 게다. 그러나 노담은 그럴 리가 있느냐고 응한다.
"자네가 공연히 사람의 마음을 묶지 않도록 하게나. 사람의 마음은 억누르면 가라앉고 치켜 올리면 올라가지. 오르락내리락 하다가 마음은 쇠잔해 지고 마네. 부드러움으로 굳센 것을 연하게 하고 날카로운 것으로 파집고 새겨 상처를 내지. 또 뜨거워지면 불길로 타오르고 차가워지면 얼음처럼 꽁꽁 뭉친다네. 재빠르기는 고개를 들었다 숙이는 순간에 사해의 밖까지를 휘덮을 정도라네. 움직이지 않으면 심연처럼 고요 하지만 움직였다 하면 하늘만큼 동떨어져 버리지. 세차게 치닫기만 하므로 잡아매어 둘 수 없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람의 마음 아니겠나."
사람의 마음을 누가 다스리고 어떻게 다스린단 말인가. 마음은 용수철 처럼 눌리면 눌리지만 언젠가는 눌린 만큼 튕겨지게 마련이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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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고 선무공작을 하는 짓이야말로 반풍수가 집안을 망치게 하는 일을 하게 된다. 그래서 혁명도 일어나고 반역도 있고 힘으로 자리를 차지하는 쿠데타도 일어난다 어디 이뿐인가. 전쟁과 약탈 살인 감금 이 모든 것들이 세상을 다스린다는 구실로 일어나는 일들이다. 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날까? 다스림이 태평성대를 준다는 말이 거짓말인 까닭이다. 하여튼 정치는 필요악이지 절대선은 아니다. 그러니 노담의 말을 들은 최구는 부끄러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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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를 다스린다는 포부를 품고 요순은 넓적다리 살이 깎이고 무릎의 털이 닳도록 돌아다니며 인의를 전파하려고 했다. 밤잠을 설치면서 예법을 만들고 제도를 세웠다. 그래서 유가는 드디어 요순이 태평성대를 이루었노라고 증거를 대고 사람을 다스리는 묘방을 군왕들에게 주겠노라고 공자는 전국시대를 누비고 다녔다. 그러나 군왕들은 공자의 말보다 활을 믿었고 군마를 믿었으며 수더분한 농부들을 잡아다가 군사를 만들어 사람이 사람을죽이고 땅을 빼앗는 힘을 믿었다. 다스림의 철칙은 항상 법보다 주먹이 앞선다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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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로가 로마가 마음에 안든다고 불을 지르고 시(詩)를 읊었다. 순했던 연산군이 포악해져 신하를 모질게 죽였다. 옛날만 그런 것은 아니다. 본래 사람의 마음이 종잡을 수 없는데 다스린다는 이의 마음을 어떻게 믿을 것인가. 치자도 사람이니 그의 마음도 역시 사람의 마음 이다. 그렇게 불안한 것으로 세상을 다스린다고 해서 사람의 마음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내버려 두는 방법이 제일이라는 말로 최구가 노담의 말을 들었을게다.
자유나 행복은 사람의 호주머니에 있는것이 아니다. 나뭇잎에 있고 하루살이의 날개에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찔레꽃 향기를 탐하는 나비의 마음이 사람의 마음보다 위대할런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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