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흔적

죽순과 하루

두레미 2013. 5. 30. 13:33

지난번 1박2일 고향나들이에는 아직 죽순이 돋아나질 않아서

곁눈질만 하고 왔는데 언제 죽순을 함 따러 가볼까 그냥 말까

이제는 해가 다르게 늙으시는 친정어머니께 죽순을 따서 보내달라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다.

언제 바람처럼 한번 다니러 가는척 죽순을 따올까나~

차일피일 미루었는데 전화를 하신다.

"너 오늘 집에 있냐?"

"집에 있지요? "

"죽순이 내 다리통보다 더 크게 올라왔는디 지금 죽순따다가 부칠라고

택배에다 전화했더니 비가와도 가지러온댜. 그려서 죽순받으라고 전화

한겨."

아이고~ 캐기도 힘들고 들고 내려오기도 힘들텐데 허리도 안 좋으시다면서

기어이 또 죽순을 따신게다.

암소리 안하고 있으면 그냥 넘어가실 줄 알았더니 ......

전화를 끊고 죽순을 정리하시다가 또 전화를 하신다.

"너 죽순 깔때 어떻게 까니?  죽순을 깔때는 말여 반으로 짝 뽀개서 까면

잘 까지는 거 아니?  그냥까면 안까진다."

죽순깔 줄도 몰라서 애쓸까봐 역부러 전화를 하셔서 죽순까는 방법을 또 알려

주시는 엄니~   늙어 꼬부라져도 엄니맘엔 항상 챙기고 가르쳐줘야 할 대상인가보다.

이튿날 죽순은 도착하였고 하루종일 비님도 내리시고 덕분에 시원한 하루동안을

죽순과 친구하며 지냈다.

 

 

 15킬로짜리 커다란 사과상자에 가득 담겨온 죽슨들

 

 

 

 뽀얀 속살보다 껍질이 더 많은 죽순을 까고 다듬고 처음 죽순을 대했을때는

신기하고 재밌어서 이리보고 저리보고 했는데 이제 많은 양에 할일이 먼저여서

자리잡고 앉아 열심히 까기만 했다.

처음엔 부드럽고 연한 속살이 아까워 따로 모으기도 하고 껍질을 따로이 모아

쪄서 차를 우려 먹기도 했지만 이젠 다 쓰레기 봉투로 직행이다.

커다란 채소봉투로 가득 두봉지가 나왔다. 

껍질만 담았는데도 양손으로 들기도 버거울 무게를 박스에 모자른다고 두번을

올라 따 오셨다니 참~  죽순이 이젠 질렸다고 해얄라나........

 

 

 

 뽀얀 죽순을 우리집에서 제일 커다란 들통에 쌀뜨물받아 소금을 넣고 한시간여 푹 삶아내야하니

삶아지는동안 껍질을 치우고 집안을 둘러보니 화분에 더부살이로 자라는 피를 어찌해야하나~

작년에 한포기가 자라서 그냥 두었더니 올해엔 화분마다 씨가 들어앉아 싹을 틔워서 강인한

야생성을 보여준다.

그 싱싱한 이파리를 난초 이파리인양 바라보기 좋다고 했었는데 한겨울이 지나도 죽지를 않고

옆에서 새로새로 가지를 치는데 그냥 두면 아마 몇년이고 갈것 같은 기세였지.

올봄 할 수없이 뽑아 버렸는데 그 후손들의 기세가 또 만만치 않다.

어떻하나~

언제 피살이를 해? ㅎㅎ

 

 

 

 

 

 

 

 

 안양천에서 덤으로 주워온 꽃을 꽂아놓고 흐뭇했는데 그들도 시절이 다 되어가니

하나둘 시들어가고 씀바귀와 지칭개는 서둘러 씨앗을 날려보낼 채비를 한다.

솜털 가득한 날개는 가벼운 바람에도 상승을 해서 날아오르니 여기저기 둥둥 떠다니기 시작한다.

너희들과도 이젠 헤어져야 할 시기가 된것 같구나.

조심조심 쓸어담고 미련없이 뽑아 정리를 했다.

 

 꽃병을 닦고 수반과 침봉도 씻고 정리를 하는동안 죽순은 삶아지고

집안엔 옥수수 삶는 냄새로 가득하다.

죽순 삶아지는 냄새가 꼭 옥수수 삶아지는 냄새와 흡사해서 냄새만으로는

옥수수를 삶는것 아닌가 할 만큼 구수하다.

옥수수 삶는 냄새를 맡고 있자니 삶은 옥수수 생각이 간절해지고 옥수수를

사러 나갈까~ 비오는 날의 저습한 실내에서 냄새는 오래 후각을 자극한다.

잘 삶아진 죽순을 꺼내면서 한입 깨물면 옥수수 맛이 물씬 날것같은 착각에

빠지면서 김이 모락모락나는 죽순을 건져내고 김이 빠지면서 수분도 함께

날라가고 채반에 널어 반건조시켜 냉동보관하면 두고두고 좋은 먹거리가 될것이다.

 

 

 

 

 

 

 

 

뜨거운 김이 빠지고 고슬고슬해진 죽순을

채반에 담아 널고 반쯤 마르기를 기다리는일

채반에 돌려 담아놓으니 한송이 커다란 꽃 같다.

죽순으로 커다란 두송이 꽃을 피워냈다.

엄니의 사랑과 정성으로 피워낸 내리사랑의 꽃.

자식을 사랑하는 엄니 가슴에 달아드릴 수 있다면

양쪽 가슴에 달아드리고 싶을 만큼 예쁜 꽃이 되었다.

두고두고 죽순만 보면 엄니 생각이 날것같은 하루가

커다란 꽃으로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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