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처럼 바람처럼

편지

두레미 2010. 9. 29. 10:59

 

 우리 엄마 열 아홉 꽃다운 나이에  듣도 보도 못한 서른한살 노총각한테 시집 오셔서 칠남매

낳아 기르시느라 겨우 초등학교일학년 다니다가 조금 깨우친 한글도 다 까먹고 까막눈이 되셨지요.내가 국민학교 들어갈 때만 해도 한글을 가르쳐 주셨는데 그이후로 줄줄이 동생들이 생기고 생활은 더 어렵고 바쁘고 글씨를 쓸일도 읽을시간도 없이 사셨습니다.

자식들 다 키워 내보내고 이제는 찌그러진 고치같은 빈집을 혼자 지키시며 적적하고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노인대학에서 가르치는 한글을 배우기 시작하시더니 더듬더듬 한글을 읽으시고

길을 가다가도 간판만 보면 큰소리로 읽으십니다.  아주 자랑스럽게~   나도 이제는 그런 엄마가 창피하지 않을만큼 나이를 먹었습니다.   딸이 보낸 간단한 안부 편지를 들고 자랑스럽게 큰 소리로 읽어내리시는 엄마, 너무나 큰 감동을 받았다고 두고 두고 읽어보시겠다고 고이 간직하셨다는 얘기를 듣고 우리들의 하찮은 일상이 엄마에겐 얼마나 큰 감동인지를 깨달았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일제 강점기 징용으로 끌려가 일본에서 강제노동을 당하셨습니다.

그 피해 보상으로 위로금이 지급된다고 서류를 구비해 보내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수령용으로 인감증명이 필요하다기에 서류를 준비해 부치려다 달랑 인감증명만을 넣기가

너무 썰렁합니다.   전화로 안부를 수시로 통하지만 글로 써보면 어떨까 평소에 편지를 주고

받는 모녀지간을 부러워하시던 엄마가 생각 났습니다.

큰 글씨로 간단한 문장을 써보자.

우체국 가기전에 간단히 편지를 써서 서류와 함께 동봉을 해서 보냈습니다.

서류를 잘 받으셨는지 전화를 드리니 잘 받았다고 하시는데 편지얘기는 하지 않으십니다.

편지를 읽으시기에 너무 무리였을까?

자존심 상하실까봐 여쭤보지도 못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다음에 전화를 해도 또 편지 얘기는 없습니다.

그렇게 추석이 돌아오고 동생들은 추석차례를 지내고 친정을 다니러 갔습니다.

저녘에 안부 전화를 드리니 동생들과 제부들이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그 감동을 전해 줍니다.

어머니께서는 평소처럼 서류만 들어잇는줄 아시고 그냥 차곡차곡 모아 두셨다가 명절 쇠러온

올케가 서류 정리를 하면서 비로소 편지가 동봉된것을 아셨습니다.

살가운 우리올케가

"엄마 편지가 들었는데 모르셨구나.  역시 큰딸이 최고여~ 큰딸밖에 없네." 너스레를 떨며

"엄마 이 편지 읽을 수 있어요?"  

"그럼 그것도 못읽어"  하시면서 당당하게 읽으셧답니다.

"야~ 우리엄마 역시 대단해~정말 대단해~"를 연발하며 기분을 돋워주었다니 딸들보다 낫습니다.

이렇게 간단한 안부 편지에 감동을 받아 딸 사위들이 오니 자랑을 하시면서 큰 소리로 또박또박

읽어 내려가시는 어머니께 진작에 편지 한장 보내드릴 생각을 못했을까요.

편지 자랑을 하시니 제부들이 기념촬영 해야된다며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이렇게 가족 카페에 올려 주었습니다.    노인대학에서 배우신 실력을 뽑내시며 편지를 읽으시고 서류에 당당하게 친필로 싸인까지 하시는 모습입니다.

추석이 지나고 준비한 서류를 들고 마지막 마무리를 하셔서 접수하니 바로 입금을 해 주었다고

전화를 하십니다.

너희들이 다 도와줘서 서류접수 잘 마치고 바로 위로금 받았으니 그동안 신청서 넣을때 함께 애써주신 동네 사람들과 저녘한끼 먹어야겟다고 혹시 밥 값이 더 나올지 모르겠지만 사람 사는일이 돈으로만 되는것이 아니라 인정이 있어야 된다며 애써주신 분들께 꼭 식사 대접을 하시겠답니다.  "그러세요.  역시 우리 엄마네. 엄마가 이렇게 계셔서 참 좋아요. 행복해요."  

앞으로는 전화만 말고 가끔 편지를 드려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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