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처럼 바람처럼

무박 기차 여행

두레미 2010. 5. 9. 11:24

오월을 기다리며 일찌감치 기차표를 예매 해 놓고 날짜를 기다렸다.

5.4.3.2.1 카운트 다운에 들어가며 마음이 부풀어 가는데 일기 예보가 심상치 않다.

밥을 먹다가도 밥그릇을 들고 일기예보를 보러 가네.

아이 동티가 났나~ 비가 온다네. 저녘에 시작해서 아침까지~

뭣이여 전국적으로 온다고~

아무래도 안되겠다고 일정을 바꾸어 기차표를 다음날로 바꾸고

그렇게 금요일 새벽 첫 차를 타고 당일치기 기차여행을 하게 되었다. 

 

 

 

승선교를 지나 우리는 선남 선녀가 되어 자연속으로 빨려 들었다.

 

순천역에 내려 버스를 기다리며 옆에계신 할머니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다.

선암사는 어찌 가시요.

산 넘어 송광사까지 가보려구요.

그라믄 시간이 늦었네.

등산허기는 늦은 시간이여.

그러게 말예요. 서울서 첫차를 타고 왔는데도 그렇네요.

여수 엑스포 준비로 철길 복선화 작업으로 열차는 자꾸 지연되고

직선으로 뚫려져 기차는 굴속으로 굴속으로 달리고 순천 시내에도 새로지은

역사가 반짝반짝 빛이나고 순쳔 시내에도 한참 공사 중 이다.

 

 

 선암사의 뒷간도 예쁜 연등으로 장식을 했네.

그 유명한 뒷간을 그냥 지나치면 안되겠지?

우리들에게는 특별할 것도 없지만 이제는 추억으로만 존재하니

영역을 표시하고 앉은 자세로 기념 촬영도 하고.

 

 

 

 

 부도 밭에 기울어진 오월의 햇살이 아련하게 느껴진다.

오래된 부도엔 노인의 검버섯같은 무늬가 피어났다.

 

 부드러운 하늘색을 배경으로 피어있는 연달래가 마치

오월 숲속에 널어놓은  홑 이불 같다.

 

 

 

 

 

 

 선암사를 나와 작은 굴목재로 시작해서 큰 굴목이재로 넘어가는 능선길이 아늑하니 좋다.

막 돋아난 부드러운 사초들이 햇살을 받아 그 빛이 은은하고

오솔길을 따라 피어있는 야생화들을 발견 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송광사 굴목재로 접어들면 앙증맞은 무인대피소는 꼭 옛날 우리집

남새밭가에 있던 잿간처럼 생겼다.ㅎ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는 고즈녁한 산길에 둘이서 오븟하다.

굴목이재에서 만난 유일한 두 사람 사십대쯤 돼 보이는 아짐이 전부였다.

우리가 장군봉을 오를까 연화봉으로 갈까 망설이는 차에 큰 굴목이재를 넘어서 왔다.

어~디서오셨어요?

아직 점심식사 전여요.

아따 보리밥이 꿀맛이겄네요.

근디 장군봉은 무리여요.

연산봉도 무릴것인디. 송광사 가는길만도 한참인디요.

뭣이 한참여~

빨리 내려가서 순천만 보고가도 좋겄구먼.

쟝군봉을 오르실라면 접치에서 올라오시는것이 길이 완만해서 한결 부드러운디

이곳 지리를 잘 모르싱께 이 쪽에서 오르션갑네.

이쪽은 오르는 길이 고바위라서 힘들것여요.

지금 시간으로는 장군봉 오르는것은 무리여요.

송광사까지 가실라면 서둘러 가셔야겄어요.

주거니 받거니 두 아짐의 친절한 안내를 받아들여 우리는 장군봉 오르는것은 다음으로 미루고

큰 굴목이재를 향해 송광사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고맙습니다.

즐거운 여행되셔요.

서로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송광사가 가까워지니 대나무 밭으로 산마루에 해가 턱걸이를 하고 있다. 

 

 다행히 송광사 넓은 터에는 아직 해그림자가 드리워지지않아

마지막 햇살에 눈부시게 아름다운 목단꽃을 감상 할 수 있었다.

 

 

 넓고 큰 꽃잎과 노란 꽃술이 황금색을 하고 있는 목단 꽃은

부귀영화를 뜻하는 꽃이라 하여서 그림으로 많이 그려져

집안에 걸어두었다고 한다.

볼 수록 귀품스러운 목단 꽃의 아름다움에 빠져 든다.

 

 커다란 싸리나무 구유 앞에서 사람들이 제각각 의견들을 나누고 있다.

관광 버스에서 쏟아져나온 한 무리의 사람들과 부처님 오신날 행사를

한참 준비중인 사찰은 어수선 하기만 했다. 

조계산의 동서를 가로질러 선암사에서 송광사까지 재를 넘고 넘어서

송광사 주차장에 다다르니 해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참새가 방앗간 옆을 지나치듯 가게앞을 지나치다 쌀엿 무더기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엿 한봉지를 골라 들었다.

복분자가 들어간 엿이란다.

오도독 오도독 정말 이에 달라붙지도 않고 모래알처럼 부스러진다.

냉큼 두개를 오도독오도독 깨물어먹는 나를 못말리겠다는 눈으로 쳐다본다.

홀탱님!

 

멋적게 웃으며 홀탱님 오늘 수고 많으셨어.

늘보 마눌 데리고 역정도 안내고 동행해 주셔서 고마워요.

맨날 말로만 고맙다고 허지.ㅎㅎ

송광사에서 7시 20분 버스를 타고 순천까지 꼬불꼬불 산길을 버스기사님 잘도 달린다.

숨가쁘게 달려왔지만 기차는 11시 56분 마지막 기차밖에 없다.

그나마 11분 연착을 해서 다음날 출발이다.

무박2일의 여행이 되었다.

 

 

 새볔에 도착하여 현관에 들어서니 딸 숙이 사다 놓은

카네이션이 쪽지를 안고 있다.

비 때문에 연기되어진 여행은 무박여행으로 또 여유스러움을

누리지 못하고 단축 여행이 되었지만 잠시 떠났던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새볔 순천을 출발해 서울에서 아침밥을 지어먹고 저녘에는

어버이날 특식을 만들어먹었으니 넓고도 긴 하루였다.

내 생애 이렇게 넓고 긴 날들

넉넉한 날들이 얼마나 될까.

 많이 남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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