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그륵
정일근
어머니는 그륵이라 쓰고 읽으신다
그륵이 아니라 그릇이 바른 말이지만
어머니에게 그릇은 그륵이다
물을 담아오신 어머니의 그륵을 앞에두고
그륵, 그륵 중얼거리다 보면
그륵에 담긴 물이 편안한 수평을 찾고
어머니의 그륵에 담겨졌던 모든것들이
사람의 체온처럼 따듯했다는것을 깨닫는다
나는 학교에서 그릇이라 배웠지만
어머니는 인생을 통해 그륵이라 배웠다
그래서 내가 담는 물 한그릇과
어머니가 담는 한 그륵의 물은 다르다
말 하나가 살아남아 빛나기 위해서는
말과 하나가되는 사랑이 있어야 되는데
어머니는 어머니의 삶을 통해 말을 만드셨고
나는 사전을 통해 쉽게 말을 찾았다
무릇 시인이라면 하찮은 것들의 이름이라도
뜨겁게 살아있도록 불러 주어야 하는데
두툼한 개정판 국어사전을 자랑처럼 옆에두고
서정시를 쓰는 내가 부끄럽다.
길내기 전 길 낸 후
오늘은 밥솥 길내기를 했다.
결혼할때 사가지고 온 전기 밥솥은
전기 코드만 꽂으면 알아서 밥이되고 보온까지 되지만
왠지 밥 맛도 그렇고 보온통의 효과도 그렇고
요즘 밥솥은 좋아졌다고 하지만 나는 아직 써보지 않아서
그 훌륭함을 모른다.
17~8년전에 산 무쇠솥에 밥을하고 녹물이 나올때쯤이면
길들이며 누룽지도 눌리고 깨도 볶고 콩도 볶고
따르르르 솥 뚜껑 열리는 소리와 구수한 밥냄새는
낭낭하던 엄마의 목소리같고
땀에 절은 엄마의 체취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부산하고 연기자욱한 부엌에 비치던
아침햇살 같은 추억이며
어스름 저녘 굴뚝에 피어오르는 저녘 연기같은 향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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