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른 오월은 어디를 보아도 반짝이는 연초록 물결이다.
이른봄에 나뭇잎이 나면 나들이 가자던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탱감은 기차표를 예매 해 놓고 며칠 전부터 들떠있다.
임시 휴일인 6일 아침 여섯시 십 삼분 기차를 타고 출발했다.
촌뜨기 부부인 우리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도시락을 챙기고
간단한 간식까지 챙겨 배낭에 나누어 짊어지고는 오월의
숲으로 피접을 가듯이 떠났다.
오랫만에 장시간 집을 떠나는 나들이는 떠나는것 만으로도 설렌다.
연휴가 지난 기차는 붐비지 않았고 봄 햇살은 눈부시다.
영등포를 출발한 기차는 아홉시 이십분쯤 정읍에 도착했다.
정읍에서 내장사가는 버스에는 역 앞에서 타신 노인들 몇분
내리고나니 내장산 탐방 안내소 앞까지 우리 둘 뿐이다.
안내소에 들러 길 안내 그림을 챙겨들고 숲속으로 들었다.
산길 초입은 조성되어진 야생화와 자생식물들이 방문을
환영이라도 하는듯하다.
길 안내장을 펼쳐들고 이번엔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로 가자고
갈 길을 정하고 연초록 숲속으로 풍덩 뛰어 들었다.
아침햇살에 부드럽게 일렁이는 숲속의 향기나는 바람결은
우리가 숲속을 유영하는듯한 느낌이다.
까치봉까지 사십오분이면 간다는걸 우리는 유유자적 한시간이나
걸려 까치봉에 오르니 서래봉을 돌아 온다는 중년 남자 둘을
만난것이 처음이었다.
까치봉에서 소등근재와 순창새재 길은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오솔길로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타지않은 한적한 길이었다.
푹신한 오솔길 능선 주변엔 나무 꽃들은 다지고 가끔씩 남아
있는 연분홍 철쭉과 비릿한 밤꽃냄새나는 하얀색꽃과 발 밑으로
지천인 야생화들이며 갖가지 산나물 이름모를 풀들을 들여다보며
자꾸만 시간이 지체된다.
나중에는 탱감이 한마디 한다.
"이러다가는 해 떨어져두 못내려 가겠다."
가을산은 눈위로 볼것이 많지만 봄산은 발아래 볼것들이 많다.
순창새재 넓직한 마당길에 자리를 잡고 오늘은 우리들 세상이라며
도시락을 펼쳤다.
봄나물과 풋고추를 반찬으로 싸간 도시락을 게눈 감추듯하고 정읍
터미널에서 산 참외 나누어먹고 일어섰다.
가벼워진 배낭을 가뿐히 메고 순창새재를 지나 상왕봉에 올라가니
젊은 청년 둘이서 걸쳤던 웃옷을 벗어들고 올라온다.
백양사에서 사자봉을 거쳐 올라오는길이라며 맨손에 물병도 없이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훔치는 그들은 젊은이다.
그들과 헤어져 상왕봉을 내려와 사자봉밑에서 우리는 백양사를
향해 내려 섰다.
산비탈을 내려서니 계곡을 지나 운문암 가는길이 시멘트길로 포장되어
가파른 경사로가 백양사까지 이어지는데 그길을 내려 오면서 허벅지
근육과 발목이 부들부들 시큰시큰 난리가 났다.
아담하고 한적한 백양사 경내에 커다란 보리수 나무는 꽃이 한창이었고
스님들 공부히시는 수련방 공사로 어수선했다.
백양사를 나와 쌍계루를 지나서 내려오는길엔 비자나무와 굴참나무가
장관이다.
한겨울 위세 당당했을 비자나무는 새옷으로 갈아입은 굴참나무 사이에서
빛이 바래 보이는듯 했지만 그 모습은 당당하다.
몇백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새긴채 당당히 버티고 서있는 비자나무와 굴
참나무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가을 내장사의 단풍길이 있다면 봄 백양사는 굴 참나무와 비자나무숲이다.
산을 오르기전 물을 한병 더챙긴다는걸 깜빡잊고 오르다가 물이모자라
가지고간 사과한알을 껍질도 까기 아까워 껍질째 그냥먹고 오이두개를
마지막 꽃자리까지 나누어먹으며 내려와 매표소밖 편의점에서 산 캔 맥주
로 갈증을 화아~악 풀었다.
아침 햇살은 찬란한 눈부심 이지만 저녘 햇살은 아련한 아쉬움이다.
장성에서 저녘 여덟시 삼십 사분 기차로 영등포역에 밤 영시 삼십오분착
오고가는 길이 복잡하지 않고 여유로워서 좋았다.
오월 말쯤에나 볼 수있었던 보라색 꽃의 향연이 초순인 지금 한창이었다.
산자락마다 오동나무꽃과 등나무꽃이 연초록 바탕에 보라빛 수채화처럼
아름답고 넓다란 장성호에 반사되는 오후 햇살이 아련하다.
정읍에서 내장산 그리고 장성까지 주변엔 아카시아가 거의없다.
그 만큼 산림이 훼손되지 않고 잘 보존되어진게 아니가싶다.
아! 푸르른 오월
봄 백양사길의 굴참나무를
영원히 못 잊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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