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신경림
사람들은 자기들이 길을 만든 줄 알지만
길은 순순히 사람들의 뜻을 쫓지 않는다
사람을 끌고 가다가 문득
벼랑앞에 세워 낭패를 시키는가 하면
큰 물에 우정 제 허리를 동강내어
사람이 부득이 저를 버리게 만들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것이 다 사람이 만든 길이
슬기를 가르치는 거라고 말한다
길이 사람을 밖으로 불러내어
온갖 것 온갖 사람살이를 구경 시키는 것도
세상 사는 이치를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래서 길의 뜻이 거기 있는 줄로만 알지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는 것은 모른다
길이 밖으로가 아니라 안으로 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만 길은 고분고분해서
꽃으로 제 몸을 수 놓아 향기를 더하기도 하고
그늘을 드리워 사람들이 땀을 식히기도 한다
그것을 알고 나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자기들이 길을 만들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시 (詩) 모음 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운사에서 (0) | 2016.06.24 |
---|---|
초원의 빛 (0) | 2016.05.18 |
스크랩( 백화등) (0) | 2016.03.14 |
오탁번시인의 굴비 (0) | 2015.11.16 |
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 (0) | 2015.0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