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詩) 모음 방

길 ㅡ 신경림

두레미 2016. 4. 21. 07:16

 

 

 

 

 

 

길 

            신경림

 

 

사람들은 자기들이 길을 만든 줄 알지만

길은 순순히 사람들의 뜻을 쫓지 않는다

사람을 끌고 가다가 문득

벼랑앞에 세워 낭패를 시키는가 하면

큰 물에 우정 제 허리를 동강내어

사람이 부득이 저를 버리게 만들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것이 다 사람이 만든 길이

슬기를 가르치는 거라고 말한다

 

길이 사람을 밖으로 불러내어

온갖 것 온갖 사람살이를 구경 시키는 것도

세상 사는 이치를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래서 길의 뜻이 거기 있는 줄로만 알지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는 것은 모른다

 

길이 밖으로가 아니라 안으로 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만 길은 고분고분해서

꽃으로 제 몸을 수 놓아 향기를 더하기도 하고

그늘을 드리워 사람들이 땀을 식히기도 한다

그것을 알고 나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자기들이 길을 만들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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