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닷컴. 김태훈기자의 아침에 읽는 시
가족
진은영
밖에서
그토록 빛나고 아름다운것
집에만 가져가면
꽃들이
화분이
다
죽었다
나는 차마 말하지 않지만, 남이 대신 얘기 해 줬으면 하는 것이 있습니다. 시인 진은영은 가족에
대해 누군가 차마 못했을 말을 대신 해 줍니다 그래서일까요? 가족의 어두운면을 들춘 이 시를
암기하는이가 적지 않습니다. 단지 시가 짧아서만은 아니란 거지요.
단지 가족이라는 이유로 원수만도 못한 인연을 이어가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가족은
사랑의 샘이라는 말, 빈말에 불과합니다. 가족이란 어휘는 집밖에서만 밝게 빛날 뿐, 정작 집에 들
어가 보면 꽃이 죽고 화분이 생명력을 잃습니다.
전에 제가 살던 아파트 옆집은 정말 매일같이 부부 싸움을 했습니다. 가끔 "너랑 나는 악연이야~"
라고 소리지르는 남자의 목소리가 벽을 넘어 들려 옵니다. 그 틈으로 아이들의 울음소리도 가늘게
건너 왔습니다. 어떤 사람의 화분도 그 집 문을 열고 들어가면 다 말라 죽을 것 같았습니다.
진은영 시인은 그런 집으로의 귀가에 대해서도 썼습니다. '집에 가려면 수챗구멍으로 들어가야 한다.
(....)/파란 모기떼가 인도하는 어두운 길 따라가면/오! 내 어머니 사시는 곳/나는 돌아왔다'('귀가' 일부)
이런 시를 읽으면 마음이 무거워 집니다. 그래도 읽어야 합니다. 어떤 시는 독자의 양심을 비추는
반성의 거울이기 때문 입니다.
나는 우리 가정의 어떤 곳으로 들어가고 있나 자문합니다. 혹시 내 아내와 아이들은 나로 인해 지옥을
경험하지 않는가. 고3 아들하고 기껏 한다는 얘기가 공부밖에 없는가. 나는 왜 그 아이의 취미와 꿈에
대해 묻지 않는가. 아내의 얼굴을 보면서 아무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을 때가 다정한 말 한마디 건낼 때
보다 더 많지 않은가. 그 때 아내는 얼마나 허전함을 느낄까. 딸이 재미있는 만화책 얘기를 할 때 맞장구
쳐 준게 언제였던가.
얼마전 한 초등학생이 쓴 '학원가기 싫은 날'이라는 동시가 화제가 됐습니다. '학원가고 싶지 않을 땐/
이렇게//엄마를 씹어 먹어/(...)/심장을 맨 마지막에 먹어/가장 고통스럽게'
참으로 읽기 부담스러운 시 입니다. 더구나 초등학생 작품입니다. 출판사에 항의가 빗발쳤고 결국 이 시가
수록된 시집은 폐기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시도 남겨 둬야 하지 않았을까요? 그 시는 아이들을
공부로만 내몰면서 그걸 사랑이라고 착각하거나 공부하고 출세한 아이를 통해 자신의 체면을 세우려는 부
모의 속된 욕망을 비춘 거울이니까요. 이 시집을 폐기하라고 요구하는것은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이 흉측
하고 보기 싫으니 거울을 깨 버리자는 것에 불과합니다.
진은영 시인의 '가족'은 거울과도 같은 작품입니다. 여러분은 이 거울을 깨거나 밀쳐 두시렵니까? 부디 그러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저도 내가 가족에게 소홀하다 싶을 땐 꺼내 읽으렵니다. 밖에서는 꽃같은 미소를 뿌리며
들어서는 순간, 안면에 가득 피어났던 그 꽃을 떨어내 버린다면, 이 시를 꺼내 읽어 보겠습니다. 여러분도 이
시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고 나는 어떤 아빠이고 엄마인지 성찰 해 보시길 바랍니다. 저도 그러겠습니다.
그렇게 하기 쉽지 않다는 거 잘 압니다. 하지만 한 남자, 한 여자와 평생을 살겠다는 독한 결심까지 했던 시절을
떠 올려 보세요. 그러면 반성의 거울 가끔 꺼내 들고 자기 점검 시간, 가끔 갖는게 아주 어렵지는 않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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