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낀 책꽂이에서 책 한권을 골라 읽고
마지막장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전화 벨이 울린다.
여보세요?
흐흐흐흐~~~
엄마~아~~~!
거기 눈 많이 안 오니?
아니 째끔 오는둥 하다가 말았어요.
그려~ 여긴 웬 눈이 이렇게 많이 오는지 날마다 눈여.
그러게 말여요. 눈 많이 온다고 뉴스에 나오대.
나 홍도 갔다 왔어.
아니 이겨울에 홍도를?
거기뿐이간~ 동네 청년들허고 씨라구 축제 허는디도 갔다왔어.
거기가 어디라더라 양 뭣이라고 허는것 같던디.
강원도 양구?
강원도 양구가 시래기로 유명혀.
그려 맞어 강안도(강원도) 양구.
레미 너는 워째 그렇게 잘 아냐~ㅎㅎ
씨라구 축제 헌다구 혀서 갔더니 김이 모락모락나는
하얀 가래떡에 갖은 나물 반찬에 거기 씨라구는
얼매나 부드럽고 맛있는지 여기 씨라구는
거기에 비허면 쓰레기같더더랑게.
어디서 왔냐구혀서 부여서 왔당게 그러냠서
얼매나 살갑게 대허는지 몇명이서 왔냐구혀서
관광차 한대로 왔다고 살짝 뻥쳤어.ㅋㅋㅋ
우리 동네도 닥광무(단무지 무)를 재배허니께
동네 청년들이 씨라구를 만들어 볼라구 관광차 갈
사람들을 모집허는디 강원도로 간다니께 눈도 많이 오는디
가다 사고나면 눈속에 파묻혀 죽는다고 가는 사람이 25명밖에 없었어.
그중에 여자는 아랫마을에서 3명 윗 마을에서 두명
그중에 노인네는 나 하나 뿐여.
까짓거 이나이에 나 혼자 가는것도 아니고 동네
젊은 청년들허고 같이 가는디 가다 죽으면
동네 청년들이 관광차에 끄집어 싣고 오겄지.
죽는것이 무서워서 못가? 참내.
ㅍㅎㅎㅎ 우리엄마 화이팅~!
여전히 용감하신 우리엄마!
잘 다녀오셨어요.ㅎㅎㅎ
그러고 말여 보건소이서 타다먹는 당뇨하고 골다공증 약이
다 떨어져가서 타러갔더니 큰 병원에가서 다시 검사하고
사진 찍어본담이 오라고혀서 지난번 검사혔던 큰
병원이로 가서 검사를 혔더디 사진을 찍고 내려가도 되냐고
간호사헌티 물었더니 내려가도 된다걸래 그냥가도 되냐고
허니께 서류는 벌써 의사선생님헌티 가 있댜. 참말로~
그려서 의사 선생님헌티 갔더니 의사선생님이
제가 보기에는 할머니는 당뇨도 골다공증고 없으신것 같은데요.
일주일 후에 다시 한번 나오셔서 검사를 받아보시고
그 때 확실한 소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허대.
그려서 먹다 남은 당뇨 약은 어떻게 허냐니께
일단은 약을 드시지 말고 일주일 후에 다시 검사를 해보자고
해서 왔는디 당뇨도 골다공증도 없느것 같다고혀시는디
의사선생님 감사합니다. 하고 깎듯이 인사혔당게.
하도 좋아서 너한티 전화하는겨.
얼매나 기분이 좋던지 의사실 밖으로 나와서 간호사덜 한티
의사 선생님이 뭘 좋아하느냐고 물었더니 왜그러냐고 혀서
하도 감사혀서 좋아하시는거 사다드리고 싶어서 그런다니께
까스명순가를 좋아헌댜.
까스명수는 소화제 약인데 까스명수가 아니고 박카스아녀요?
아이고 간호사들이 할머니가 말씀하시니까 값이 싼 박카스를 가르쳐 줬나보네.
이~ 그런가? 박카스던가 그것을 사다 드렸더니 의사선생님이 참 좋아허시대.ㅎㅎ
병원도 혼자서 잘 다니시는 우리엄마 씩씩하시고 용감하시네.
그 놈의 당뇨병이라는것이 천하에 몸쓸병이여.
조심 헐 것도 많고 합병증도 많고 먹지말라는 것도
얼매나 많은지 말여 하얀 쌀밥도 먹지마라
하얀 밀가루도 설탕도 지름진 (기름진)고기도 먹지마라
이것저것 다 빼고나면 뭘 먹어 대체.
그러게 말여요. 그런디 먹지마라는 음식은
건강한 사람에게도 많이 먹으면 안 좋은 음식들여요.
그러니께 조금씩 골고루 드시는게 좋아요.
그런디 나 혼자 있으면 골고루 먹어지간?
자연 나 먹고 싶은거 한두가지 놓고 먹게 되고 허기도 싫어.
허긴 그려요. 저도 어쩌다가 혼자 밥먹으면 내가 좋아하는거
한두가지 꺼내 놓고 먹게 되는데, 젊은 나도 그러는데
나이드신 노인이신 엄니야 두말할것 없지. ㅠㅠ
그려서 혼자 먹기 싫어서 노인정에가서 밥해먹고
교회가는 날은 교회가서 점심 얻어먹고
교회에 가면 얼매나 점심을 잘 해 주는지 몰러.
집에 올 때는 차까지 태워다주지. 헌금 5,000원이 안 아깝다니께.
그려요. 그러니까 나가셔서 점심도 드시고 좋은 말씀도 들으시고
좋은 마음으로 기도도 하시고 마음이 편안하시면 좋지.
기도는 목사님이 객지나간 자식들 기도까지 다 해 주시는디.
남들은 뭐라뭐라 중얼거리면서 기도도 하더만 나는 아직 기도 할 줄도 몰라.
기도 할 줄도 모르면서 그냥 무작정 댕기는겨.
손뼉치면서 하는 노래는 하도 불르니께 노래는 조금 헐줄 알지.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댕기는거여. ㅎㅎㅎ
어제는 야래(이아래)서 팥죽쒔다고혀서 내려가서 팥죽 얻어먹고
오늘은 상아댁이서 팥죽쑨다고혀서 지다리고 있는거여 시방.
당뇨도 골다공증도 없어졌다고혀서 하도 좋아서 너한티
전화 한거여. 이저 할 얘기 다 혔으니께 이자 너 볼일 봐라.
그만 끊어.ㅎㅎㅎ
그려요. 점심으로 팥죽 맛나게 드시고 동네분들께 안부전해주시고
그리고 용감하신 우리 엄마 축하 축하혀요~!!!!!
늘 혼자계시는 엄마를 생각하면 외롭고 쓸쓸하실 생각에
진눈깨비내리는 초겨울의 날씨처럼 착 가라앉는 마음인데
요즘의 내 마음이었는데 전화기너머의 밝고 활기에 찬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니 우물을 깨우는 도르래소리처럼
아름다운 우물의 노랫소리처럼 내 귓가를 맴돌아서
잠자던 내 맘속의 우물을 깨워주신다.
얼마나 감사하고 감사한지 코끝이 싸하고
목이 턱턱 막혀온다.
늘 씩씩하고 용감하신 우리 엄마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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