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와 꿀벌
대추를 줍다가
머리
대추에 처박고 죽은
꿀벌 한마리 보았다
단맛에 끌려
파고들다
질식을 했을까
삶과 죽음의
如實한 한 자리
손바닥에 올려놓은
대추 한 알
꿀벌 半 대추 半
눈이 시리도록 푸른 가을 하늘
박 경 리
꿀맛에 취해 허랑 방탕하게 사는 사람은
가슴 뜨끔할 것이요.
귀밑머리 흰 주름얼굴은 돌아갈 날을 헤아릴 것이요. 철모르는 여린
아이는 진저리치며 저만치 사립문 밖으로 내어던질 것이나 이 모든
이들의 머리 위에 푸른 가을 하늘은 얼마나 눈부신 것인가?
대추 한 알에 목숨을 바꿨구나. 혀를 차려니 지구 한 알에 다글다글한
꿀벌 중 하나인 우리들 아닌가.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아도 지금
할 일은 단 하나. 대추는 많고 가지는 휘어도 저 꿀벌 머리 박을
대추는 저것 하나렷다. 몰두(沒頭)란 본디 진드기가 쇠잔등에 붙어
머리를 처박는 모습에서 유래했단다. 이것저것 따지다간 두꺼운 쇠
가죽을 어찌 뚫을것인가? 몰두는 때로 근시안처럼 보이나, 우주를
보는 망원경도 한쪽 눈 가려야 잘 보이는 법
'삷과 죽음의 여실한 한 자리' 노 시인의 손바닥 위에 가을볕 한
줌이 봉분이다. 내년 봄 다시 꿀벌 닝닝거리고 대추나무 움 자라리라.
반 칠 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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