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처럼 바람처럼

모녀 간에

두레미 2008. 10. 22. 00:17

이 큰 딸여!

전화를 안 받으셔서 어디 가신줄알았네.

집에계신데 왜 이렇게 전화를 늦게 받으셨어?

이  마당잇 콩 줍고 있었어. 달려와서 받을라먼 끊어지구 허네.

무슨소리여요. 오래 울려도 안받으셔서 이것이 네번째구먼.

얼래 나 이저는 귀먹어가네벼. 노인정이서두 사람들이 나보구

잘 못알아듣는다구 혔쌌는디 나이먹응게 귀도 먹네벼. 하기사

나이들면 적당히 귀도 먹어야 들어서 안좋은 소리도 걸러듣는댜.

하이구 엄마두 참 요즘 좀 어떠셔.

글쎄 간간히 꼭 배 고픈것처럼 속이 쓰려서 지난번 소견서 써주신

의사 선생님한테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애기했더니 의사 선생님이

컴퓨터를 열어보고 고개를 짜웃 짜웃 허시더니 아마 병원에서 준

약이 조금 독해서 그런것 같다구 약을 며칠분 지어주셔서 그걸 먹었

더니 속 쓰린게 없어졌어야.

다행이네. 잡수는거는 어떻게 잡수시는데?

먹는것도 예전처럼 먹질 못허지.  조금 많이 먹으면 부대끼는것같고

매웁고 짠것은 이직 무서워서 못 먹고 있당게.

사람들이 병원서 나왔을때는 얼굴이 영 안�더니 요새 쪼끔 괜찮다고

허데. 엇그저께는 저녘내 풋 팥을 까는라구 마실을 안갔더니 사람들이

이 노인네 또 무슨일 있내비라구 걱정 혔다느먼. 그려서 고맙다구 혔네.

노인 대학이서두 내가 병원있는동안 새태골 사람들이 걱정을 얼마나

허던지 사람들이 내가 나가니께 여기 저기서 애기 허더라니께. 그려서

고맙다고 요구르트 사서 하나씩 돌렸더니 이게 웬일이냐구 우리가 사서

줘야는디 되레 받아먹으면 안된다구혀서 내가 죽었으면 얼굴도 못볼텐데

걱정들 혀줘서 이렇게 살아 왔으니 고맙고 좋아서 사는거니께 먹으라구

혔더니 참 고맙다고 허먼서 먹더랑게. 그까짓거 몇 천원이면 되는디 먹는

걸로 인심이 들고나야. 뒷골에 언니 한티두 우리 단감을 좋은걸루 몇개

따다가 줬더니 고맙다고 혔쌌지.  동네 사람들 한티도 봄이면 수로에 지천인

돌 미나리 꺾어서 한봉지씩 대문 안으로 던져 놓고 머위 쌈 꺾어서 한 봉지씩

뒷 산에 고사리 꺾어서 하줌씩 돌리면 좋다고들 혀. 내가 놀면 뭐혀. 그러니께

이아래 성이 햅쌀 나왔다구 두어말 가지고 와서 아줌니 입맛 없으신디 햅쌀로  

밥 지어 잡수시라구 가져오지 저 훗펀이 아줌니네는 여름이먼 수박 가져오지

고추를 거나 한가마니는 가져 왔더랑게. 도토리 묵 쒔다구 불러서 도토리 묵

실컷 먹었지. 베라별것 다 얻어먹어도 공으로 얻어 먹는것 없어야.

그려요. 엄마가 예전부터 동네 어려운 사람들 한테 베풀고 살아서 복 받으시는겨.

아무리 귀하고 맛있는것도 나누어먹고 동네에 드는 그지라는 그지는 다 우리집에서

먹고 자고 떠돌이 장사꾼들도 우리집에서 숙식을 하고 그리고 그 서서방네 살던

승수라는 애 나는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나. 그애 어두워지면 우리집 대문에서서

있다가 저녘 얻어먹고 자고 이튿날 아버지 이엉 엮을때 옆에서 짚을 섬겨주던애.

지 큰 엄마 한테 혼나는 날이면 우리집으로 와서 먹고 자고하더니 크니까 집을

나갔었잖여요.

그렸었지. 잘 사는 사람들한티 잘해주먼 고만지도 모르는디 어렵고 불쌍한 사람들헌티

조금 해주먼 그걸 고맙다고 허잖여. 그려서 지금도 새로들어온 중국 동포 나보담 나이

많은 노인네들헌티 밥 한끼라도 해서 나누어먹을려구 헌당게.

나이 많으신 엄마도 이렇게 열심히 사시는데 나는 엄마 �아갈려면 어림도 없당게.

모녀는 이심전심 서로의 마음을 보듬으며 위안을 삼습니다.

인생의 선후배로 가장 든든한 응원자로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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