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 문
권 혁 웅
오래전 사람의 소식이 궁금하다면
어느 집 좁은 처마 아래서 비를 그어 보라, 파문
부재와 부재 사이에서 당신 발목 아래 피어나는
작은 동그라미를 바라보라
당신이 걸어온 동그란 행복 안에서
당신은 늘 오른쪽 아니면 왼쪽이 젖었을 것인데
그 사람은 늘 당신과 반대편 세상이 젖었을 것인데
이제 빗살이 당신과 그 사람 사이에
어떤 간격을 만들어 놓았는지 궁금하다면
어느집 처마 아래 서 보라
동그라미와 동그라미 사이에 촘촘히 꽂히는
저 부재에 주파수를 맞추어 보라
그러면 당신은 오래된 라디오처럼 잡음이 많은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것이다, 파문
.......사는 일이 참 쓸쓸한 동그라미를 그려가는 일이라고 생각될 때,
그 안에 사랑이란 자신에게서 피어나고 있는 주파수를 넣어주는 일
이라고 생각될 때, 이 시를 품속에서 몰래 꺼내 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우리는 길을 가다가 비를 피하기 위해 우연히 어느 집 처마
아래에 서 있을때, 빗살을 보면서 오래도록 부재했던 그리움 쪽으로
둥글게 번져가는 일을 경험해 보아야 합니다. 한 번은 파문, 해 보아
아야 합니다.
김경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