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詩) 모음 방

겨울 이야기

두레미 2013. 11. 13. 10:34

 

 

 

 

겨울 이야기

                                    - 김상미(1957~)

 

천 년 전 겨울에도 오늘처럼 문 열고 있었다.

문 밖 짧은 해거름에 주저앉아 햇빛

제대로 이겨내지 못하는 북향,

쓸쓸한 그 바람소리 듣고 있었다

 

 

어떤 누구와도 정면으로 마주보고 싶지 않을 때

문득 고개 들어 바라보는 창

나뭇잎 다 떨어진 그 소리 듣고 있었다

 

 

세상 모든 추운 것들이 추운 것들끼리 서로 모여

내 핏속 추운 것들에게로 다가와

똑 똑 똑

생의 뒷면으로 가는 문

두드리는 소리 듣고 있었다

 

 

물결치는 겨울 긴 나이테에 휘감긴 울창한

숲 향기와 지저귀는 새소리와

무두무미한 생의 입김들이

다시 돌아올 봄 문턱에다 등불 환히

켜는 소리 듣고 있었다

 

마치 먼길 혼자 달려온 천 년 전 겨울

천천히 가슴으로 녹이는 것처럼

내 몸 안의 겨울 이야기들이

소리없이 내리는 함박눈에 실려

누군가의 기억 속으로 기억 속으로

스며드는 소리 듣고 있었다

 

 

천 년 전 겨울에도 오늘처럼

 

 

 

       시 전편에 뼈저린 쓸쓸함이 서려 있다.

이러고 싶지 않은데 이런 순간을 맞닥뜨리게 될 때가 있다.

                                                                                                  '내 핏속의 추운 것들', 슬프고 불행하고 추운 기억들이 밀려 들어

생의 의욕을 잃고 기분이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 때의 마음 풍경을 섬세하게 묘사했다.

필자는 정작 한 겨울보다 가을의 끝에서 겨울로 막 들어서려 할 때

이렇더라.  일조량이 팍 떨어지면 몸과 마음이 움츠러들어 우울증이

생기기 쉽단다.  햇빛이 보약!  햇살 한 오라기, 한 오라기가

금싸라기처럼 기껍다.

'겨울 이야기'는 '삶의 추위'와 '삶의 외로움'의 이야기다.

'먼 길 혼자 달려온 천 년 전 겨울', 전생에서부터인 듯 쌓인 화자의

추위와 외로움을 누가 알아줄까.

당신만은 기억해 달라고 화자의 겨울 이야기가 함박눈으로 내린다.

겨울은 길어라. 하지만 난로 하나로, 석유 한 통으로, 담요 한 장으로,

한결 견딜만 하리라. 화자에게 털목도리라도 둘러주고, 따끈하고

달콤한 커피를 건네고 싶다. 

 

 

                                                                                                                                                          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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