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볼
존 폭스 지음. 김재성 옮김. 황소자리
"아빠. 우리는 왜 공놀이를 하는 걸까요?"
저자와 케치볼을 즐기던 아들이 물었다. 하버드대에서 고대 마야문명 연구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우물쭈물 아무런 답도 못했다. 아들이 괜한 질문을 했나보다. 아버지는 짐을 싸서 집을 떠났다.
4년 동안 공놀이의 발상지를 찾아다니며 직접 체험하고 연구하고 글을 썼다.
저자가 축구의 기원을 찾아간 곳은 마초들이 득실거리는 스코틀랜드 북부 오크니 제도의 커크월 섬.
이곳에선 크리스마스와 새해 첫날 과거 지배세력이 달랐던 내륙지역과 항구지역으로 편을 나눠 톱밥을
넣은 공인 바(ba) 하나를 두고 다툰다. 교회 종소리를 시작으로 남성 수백 명의 머리위로 공이 던져진다.
거구의 사나이들은 자신의 지역으로 공을 가져가려고 치열한 몸싸움과 주먹다짐을 벌인다. 경기장은 따로
없다. 자갈과 포장도로, 좁은 골목길이 전쟁터로 변한다. 두 지역이 실제로 싸움을 벌이면 섬 전체의 안전과
질서가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거친 놀이는 갈등과 불화를 해소하는 장치였다.
'커크월 바'의 유래는 요약하면 이렇다. 수백년 전 주민들은 앞니가 툭 튀어나온 폭군의 압제에 시달렸다.
폭정에 지친 주민들이 봉기하자 폭군은 다른 섬으로 도망쳣다. 하지만 늘 폭군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불안
에 떨며 살았다. 그 때 젊은 영웅이 나섰다. 비참한 나날이 끝났다는 증거로 폭군의 머리를 잘라오겠다며 떠
났다. 목을 자르는 데는 성공했지만 오는 길에 폭군의 앞니에 다리가 찔려 세균 감염으로 빈사상태에 빠졌다.
영웅이 마지막 힘을 짜내 폭군의 머리를 마을 한가운데 던지자 군중은 영웅을 잃은 안타까움과 폭군에 대한
증오에 휩싸여 머리를 발로 차며 거리를 누볐다.
저자는 커크월 바가 규칙이 거의 없고 거대한 군중이 팀을 이룬다는 점에서 가장 원시적인 축구라고 봤다.
상대를 잡아먹을 듯이 덤벼드는 커크월 사내들의 경쟁을 보며 '사냥에 나섰다' '굶주려있다' '싸운다' '영토를
빼앗는다'란 경쟁스포츠 묘사가 단순한 은유가 아니라 해묵은 기억의 흔적이라고 풀이했다.
축구 반대편에는 테니스가 있다. 테니스는 처음부터 계급 경계선을 그었다. 테니스는 중세 수도원 안에서 시작
됐다. 당시 수도사들은 부활절 만찬 후 잠깐 즐기는 테니스는 품위를 손상하지 않는다고 입을 맞췄다. 테니스에
푹 빠진 수도사들은 놀이를 하며 욕설까지 내뱉었다. 르네상스시대 유럽 왕가도 값비싼 시설을 갖추고 품위를
지키며 작고 섬세한 공을 다루는 테니스에 탐닉했다. 테니스의 어원은 프랑스어로 '주의하라'는 경고의 외침이었던
'테네(tenez)'에서 나왔단다. 귀족스포츠답게 서브를 넣으며 상대 선수에게 경고의 함성을 질렀던 데서 유래했다.
저자는 농구를 거의 모든 스포츠 가운데 사회적 목적으로 만든 유일한 종목으로 꼽는다. YMCA체육 보조교사인
제임스 네이스미스는 1891년 청소년들이 겨울에도 실내에서 활발한 신체활동을 즐기 수 있도록 농구를 고안했다.
당시로선 파격적으로 여성에게도 문호를 개방했다. 야구의 기원은 아직도 논란이 분분하다. 미국은 1839년 남북
전쟁 영웅 에브너 더블데이가 뉴욕 주 쿠퍼스타운에서 최초의 경기방식을 고안했다고 주장했다. 영국의 크라켓
에서 유래했다는 설을 잠재우려고 100주년이 되는 1939년 야구 '명예의 전당'을 설립하고 기념우표까지 발매한것.
하지만 미국역사학자들마저 '더블데이기원설'을 인정하지 않는단다.
저자는 공을 동역학적으로 가장 생기 넘치는 무정물(無情物)로 정의했다. 공은 사회적 도구라서 사람을 뭉치게도
하고 뭉쳐 싸우게도 만들었다. 양발로 자유롭게 공을 차거나 굴리고 양손으로 튀기거나 던질 수 있는 인류는 태초
부터 축복받은 셈.
긴 여정을 마친 저자는 다시 아들 앞에 섰다. 이번에 아버지가 "공놀이를 왜 하느냐"고 묻자 아들은 "한마디로 재밌
으니까"라고 답한다. 우문현답이다. 그래도 저자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저자는 아들과 스포츠를 즐길 때마다 자신
이 연구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둘 사이가 한층 가까워졋다,
바야흐로 가을야구가 절정으로 치닫는 시점이다. 겨울 스포츠인농구와 배구도 기지개를 펴는 계절이다. 함께 경기
장을 찾을 부자 뿐만 아니라 연인과 친구들 간에도 "우리가 왜 이렇게 공놀이에 환장하는 것일까"라는 화두를 던지고
화제를 끌어가는데 도움을 줄 책이다. 글이 딱딱해 소화하기 어려운 부분이 군데군데 보이는 점은 아쉽다.
박훈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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