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고향의 가까운 친척집 할아버지께서는
늘 책을 읽으셨습니다.
책을 좋아하셔서 안방 시렁에는 책이 쌓여 있었지요.
아랫목 되창문 안쪽으로 앉으셔서 돋보기를 쓰시고
책을 읽으시는 모습을 자주 보았습니다.
무뚝뚝하시고 고집이 세기로 유명하셨던 할아버지께서는
꼭 하실 말씀만을 하시는 과묵하신 편이셨지만 예의가
바르지 못한 아이들이거나 말씨가 바르지 못한 사람들을
모른체 하지 않으셨지만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가서 큰 기침을
하시며 짧지만 따듯한 한 말씀을 하실 줄 아시는 분이셨지요.
그래서 늘 어려우면서도 마음으로 든든하게 의지를 하셨던 분이셨습니다.
늙으막에 까닭없이 야위셔서 병원진찰을 받으시니 암이라는 진단을
받으셨지만 그때만해도 암은 곧 사망 선고였으니 자식들은 병명을
숨기고 마음을 편히 해드리자고 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마실길에 뜰팡을 올라서려던 순간 방에서 흘러나오는
얘기에 자신이 암이라는 사실을 얄게 되셨습니다.
큰 충격을 받으셨겠지요.
뜰팡을 올라서려다 말고 발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오신 할아버지께서는
자식들을 모아놓고 말씀하셨습니다.
쓸데없는 짓 하지마라.
너희들 마음이면 충분하다.
어치피 갈 것인데 너희들 공수고 시킬 필요없다시며 그뒤로는 보약도
통원치료도 일체 끊으시고 평상시처럼 생활하셨습니다.
아들 며느리가 그래도 한이 된다며 영양제 주사라도 맞으시라고 사정을 해도
끝내 사양을 하셔서 결국은 돌아가시고 난 다음 그동안 수고한 며느리가
영양제를 맞았다고 합니다.
머리는 짧은 스포츠형 머리에 하얀 모시옷과 삼베옷을 즐겨 입으셨던 할아버지
겨울이면 목화솜을 넣어 누빈 무명 바지저고리를 넉넉하게 입으시고
바쁜 며늘을 위해 손주를 업고 동네 산책하시는것을 부끄러워 하지않으셨던
할아버지(그 당시엔 남자가 아이를 업는것은 큰 흉이었습니다.)
어릴적 그 할아버지댁에 가서 쭈뼛쭈뼛 어렵게 책을 빌려다가 늦은 밤까지 읽으며
등잔불에 머리카락을 꼬슬리고 이불을 들석이는 바람에 등잔불을 꺼트리다가
쇠고(석유)닳리고 성냥개비 많이 쓴다고 혼이나기도 했었습니다.
지금은 내용도 가물가물 하지만 수호지며 이광수 전집 상록수같은 책들을
빌려 보았던것 같습니다.
박상우님의 글을 보니 어릴적 추억속의 할아버지 생각이 났습니다.
앞으로 나의 노년을 상상해보면서
책읽는 노년의 모습, 그 할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 이렇게 추억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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