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처럼 바람처럼

쪽파를 다듬으며

두레미 2018. 10. 12. 17:51

 

 

쪽파를 보면~

 

폭염주의보가 연일 내려지던 무덥던 여름도 지나가고 선선한 가을이 깊어간다.

조석으로 쌀쌀한 기운에 첫서리 소식이 전해지는 가을에 제법 대가 굵어진 쪽파가 달큰한 맛이 들기 시작 했다.

가을 채소들이 살아 남기위한 본능으로 당을 축적하여 추위에 얼지 않기위해 달달 해 지면 연하면서도 달아져서 가을 배추와 무는 물론이고 대문을 걸어놓고 먹는다는 가을 상추와 아욱 대파와 쪽파 부추같은 향신용 채소들도 그 맛이 달고 연해진다.

 

지난여름 폭염에 채소값의 고공 행진으로 밥상 물가는 물론 물가 상승의 주범이 되었던 채소들이 가을에는 적절한 비와 기온으로 풍성하게 나오고 있어서 참 다행이다.

풍성한 장바구니에 가격도 많이 저렴 해 져서 발걸음도 마음도 가벼워 졌다.ㅎ

 

장바구니를 풀어 정리하고 사온 쪽파를 다듬다가 내 마음깊이 각인된 옛 추억이 생각난다.

가난한 농부의 아내였던 엄니!

손톱이 초승달처럼 파이게 일을 해도 가을전에 식량이 빠듯하던시절 돈이 될만한 일들을 가리지 않고 찾아 동분서주 하셨다.

갓난이를 등에 업고 걸리며 돈 벌이가 될만한 일들을 찾아 하셨다.

참으로 용감하셨던 우리 엄니!

그 한 예로 어느 핸가 텃밭에 심은 쪽파가 얼마나 실하게 잘 되었던지 쪽파 김치에 나물에 양념으로 먹고도 남아 쪽파를 장에 내다 팔아야겠다고.

장에나가 물건을 팔아본 경험이라곤 없는 이십대 아기 엄마가 등에 갓난이를 없고 경험 많은 동네 아주머니를 찾아가 조언을 구하고 쪽파를 단으로 묶는법과 장사 노하우를 며칠 배우신 다음 쪽파를 뽑아 정성스레 짚으로 단을 묶어 커다란 대바구니에 가득 담아 등에 아기를 업은채 머리에 바구니를 이고 나룻배로 강을 건너 한시간을 걸어야 되는 장을 나가 쪽파를 팔아 보겠다고 야심찬 의욕으로 장마당엘 나가셨다.

엄니를 따라나섰던 내 어릴적 기억에

오일장의 시장골목 입구엔 우리 엄니처럼 직접 키운 물건들을 가지고 나오신 아주머니들이 빼곡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젊은 애기 엄마가 대바구니에 쪽파를 가득이고 나타나 자리를 두리번 거리자 자리를 펴고 앉은 아주머니들의 반응은 싸늘하기 그지 없었다.

어느 한 구석에도 끼이지 못 하고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 다니며 쪽파를 파시던 엄니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우리 엄니의 쪽파가 월등하게 싱싱하고 깔끔하게 손질되어 상품가치가 있어 보이는데도 쪽파를 파는 아주머니들은 단이 허술하다느니 다듬으면 자신이 파는 쪽파의 양이 훨씬 많다느니 하며 물건을 깎아 내리며 험담을 해 댔다.

쪽파가 좋아 금방 바구니를 털어 버릴거라는 기대는 쓰디쓴 경험으로 한나절을 땡볕에 자리를 옮겨가며 겨우 떨이를 마쳐 갈 즈음 지하 중국 음식점 환풍기에서 내뿜어지는 춘장 볶는 냄새에 정신은 혼미 해지고 어느 말끔하신 아주머니께서 떨이 하던 기억만 날 뿐 어떻게 돌아 왔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데 좌판을 깔고 앉은 아주머니들의 싸늘하던 눈길과 분위기며 거칠은 말투에도 굴하지 않으시던 우리 엄니의 용기는 내 마음에 깊이 각인 되었다.

자신의 몸을 빌어 태어난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수치심이나 체면치레 따위는 벗어던지시고 일생을 헌신하신 엄니!

그런 엄니의 투박하고 다듬어 절제 하실줄 모르는 거침없는 말투와 행동에 수치심보다는 연민이 앞서는 이유다.

이제는 늙으신 내 엄니이기전의 그녀와 엄니께 늘 감사와 연민이 뒤범벅된다.

이 가을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