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후원의 가을
가을을 그냥 제대로 맛도 못보고 꿀꺽 삼킬 것 같았는데 예상치 않은 횡제가 찾아왔다.
동생이 예약했던 창덕궁 후원 관람표를 사정상 양도하겠다는 카톡이 가족
카톡방에 뜨고 서로 눈치만 살피다가 용기를 내어 손을 들었다.
어이쿠나~ 다른 형제들도 창덕궁 후원의 가을을 왜 보고싶지 않았을까~
다들 눈치만 살피다가 두레미의 신청에 양보하듯 눈치들만 살폈다고......
집을 나설 때만 해도 하늘은 맑고 쾌청했지만 오후가 되면서 뭉게 구름이
모여들더니 옥류천 계곡에 들어서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지만 쏟아질
비는 아니라며 여유있게 관람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비가 쏟아졌다.
가을 단풍이 곱게 물든 후원을 보기위해 예약을 했었다는데 올해 가을단풍은
예년에 비해 늦은데다 오랜 가뭄탓인지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가을의
후원은 향기로왔다.
몰려드는 비구름에 걱정이 되었지만 무사히 관람을 마칠 수 있었다.
돈화문을 들어서며 보이는 천연기념물인 회화나무가 우람하다.
금천교를 자나서 낙선재의 가을을 휘~ 둘러보고 후원의 입구에 도착했는데
해설사를 기다리다가 빼꼼히 열린 보춘문으로 들어가 희우루와 보춘정을 둘러보았다.
보춘정은 중국에서 들여온 매화꽃을 보춘화라 하였으니 봄에 매화꽃을 감상하던
정자였으나 지금은 매화는 없고 정자만 남았다고 한다.
희우루에 관한 얘기는 여러 설이 있는데 내 식대로하면 봄에 내리는 꽃비와
가뭄에 내리는 단비, 그리고 가을에 내리는 고운 단풍비를 감상하던 누각이
아니었을까~ㅎ
낙선재의 장락문과 가을.
연경당의 장락문과 같은 이름의 현판을 달고 있다.
창덕궁안에는 단청이 없는 소박하고 검소함을 상징하는 건물로 낙선재와 연경당, 기오헌이 있다.
후원의 입구
보춘문
희우루
부용지와 주합루는 임금이 세자와 신하들과 학문을 즐기고 시험하던 장소로
부용지 안에 있는 작은 섬에 학문을 게을리 하는 사람을 하룻밤 가두는 형벌을
내렸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ㅎ
주합루는 창덕궁안의 유일한 이층건물로 아랫층은 규장각이었으나 지금은
서울대학교로 이전되었고 현판은 이십대 초반의 정조가 쓴 글씨라고 한다.
주합루를 오르는 어수문의 양 옆으로 낮은 문은 신하들이 들어가는 문으로
어른 남자의 키보다 낮아서 자연스레 고개를 숙여야 들어갈 수 있어서 임금에
대한 예를 갖추도록하였다고 한다.
영화당.
영화당앞엔 넓은 마당으로 과거시험을 치르고 급제한 사람에게 임금이 직접 꽃을
하사하던(어사화) 장소이었다.
영화당을 내려와 기오헌과 애련지로 향하였다.
기오헌은 세자가 공부를 하던 장소로 단청없이 소박하고 겸손한듯한 모습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뒤로 보이는 빨간 문으로 나가면 규장각으로 통해서 세자가 공부함에 있어 필요한 자료를 가까이
찾아 볼 수 있게 한것이 아닐까 생각되어진다.
금화문으로 들어갔던 기오헌을 나와 커다란 돌 하나를 깎아 만들었다는
불로문으로 들어간다. 이 문을 통과하면 불로 장생한다니 요즘은 중국에서도
찾아온다나~ㅎ 경복궁역에도 모조품이 세워져 있는것을 보았다.
애련지와 애련정.
애련정의 기둥에 덩굴같이 이어지는 무늬를 사방으로 장식한것을 낙양이라고 한다.
낙양은 임금이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는데 사방창으로 비치는 풍경을 장식하는것으로
액자의 장식과 같은 것이라고 한다.
애련지를 나와 존덕정으로 가는 길에 천연기념물인 뽕나무가 있다.
나이가 400살.
뽕나무 밑에서 올려다본 단풍이 그중에 화려하다.
존덕정을 오르는 옆으로 못에 비친 관람정의 모습은 부채꼴로 되어있다.
이 못의 모양이 한반도의 모양과 닮았다고도 하니 그런것 같기도 하다.ㅎ
못가에 있는 정자는 반드시 정자의 일부가 못에 들게 지어졌는데 이는
못에 비치는 반영을 감상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그냥 보는 풍경도 좋치만 못에 비치는 반영의 멋을 즐기셨으리라.
존덕정과 폄우사 오르는 길에 놓인 돌이 양반의 팔자 걸음에 맞추어 놓여졌다고 한다.
세자의 심신을 수련하던 장소로 무예와 활쏘기로 단련을 하고 폄우사로 오르는 길엔
흐트러진 몸과 마음을 가다듬으라는 뜻이었을까? 내 생각.ㅎ
취규정.
존덕정을 나와 가플막을 오르면 나오는 취규정.
밤에 별을 보던 정자라니 맑은 가을밤 서울의 한복판 하늘의 별을 지금도
볼 수 있을것 같다. 그런 행사는 없을까?
취규정에서 옥류천으로 내려왔다.
옥류천엔 임금이 농사의 어려움을 직접 체험하던 청의정이 있고
청의정아래 논에서 수확한 볏단이 세워져 있었다.다른 해에 비해
풍작이라는 해설사의 말이다. 수확한 벼는 거두지 않고 그냥 놔
둠으로 산짐승들의 먹이가 된단다.
임금이 드시던 우물과 옹달샘이 있고 소요암 밑으로 흐르는 작은
물줄기는 가물어 명맥을 겨우 유지하고 있었다.
물의 양이 많으면 미니어처 같겠지만 작은 폭포가 된다는데.......
옥류천을 올라와 연경당으로 내려왔다.
연경당은 궁궐의 사랑채(별채?)였다고 한다.
궁의 각종 모임과 연회를 하기도하고 가족이 오븟이 일상을 즐기던 곳으로
이곳에서도 남자가 드는 사랑채와 왕비와 아이들이 드는 안채가 구분되어
들어가는 문이 따로 나 있다.
임금과 남자들이 들어가는 장양문과 왕비와 아이들이 들어가는 수인문이 있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며 영화당앞에서 아들과 기념사진한장 남겼다.
아들과 참으로 오랫만의 나들이가 오래오래 기억되리라.
영화당 앞에서 이 가을이 임금에게 어사화라도 받은 기분이다.
기대 했던 단풍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두고두고 기억할 특별한 나들이였다.
오랫만의 나들이에 궁에서 가까운 맛집에서 팬스테이크를 먹었다.
젊은이들 일색으로 친구끼리 연인끼리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엄마와 아들이 순서를 기다려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하우스 와인까지
곁들여 눈치도 없이 맛나게 먹고 왔다.ㅎ
요란한 음악과 자욱한 연기에 할로윈 장식이 더 으시시한 분위기였지만
아들과 함께여서 더 맛있고 든든한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