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나들이
항상 복잡한 명절을 비껴 친정 나들이를 한다.
올해도 명절을 비껴 나들이를 하는데 다른 해보다 추석이 늦은 관계로 가을이 물씬 익었다.
서울에서 내려가는길에 경기도 지역의 들판은 거의 추수가 끝나가고
남쪽으로 내려 갈 수록 들판의 노란 벼 이삭이 가을 햇볕에 황금빛으로 눈부시다.
주말은 역시 언제 어느 때나 자동차의 행렬로 체증이 있고 그나마 그 체증이 길지 않아서
버스로 1시간 40분 터미널에 나가는 시간을 합해도 네시간이면 갈 수 있는 곳을 자가용으로 다섯시간이 걸린다.
친정어머님께서 바리바리 싸주시는 농산물이 없는 다른 볼일이라면 버스를 이용하는 편이 훨씬 경제적이다.
웬만한 나들이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참 좋으련만 요즘 자동차에 익숙해진 편리함 때문에
너도나도 자동차를 이용하는 관계로 자동차 도로는 새로운 도로가 생기고 또 생겨도 자동차 물결이다.
기름 한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너도나도 자동차 러시로 온 산천이 잘리우고 막히고 반토막이 나도
목소리만 높일 뿐 말과 행동이 다른 많은 사람들의 구호성 외침이 공허할 뿐이다.
지역 경제의 순환이 중요하지만 낭비를 줄일 수 있는 이동 방법을 모색하고 실천해야 하지않을까?
어쨌거나 두런두런 밀리는 자동차 행렬의 꼬리를 따라가며 귀신 씯나락 까먹는 얘기를 하며
고향마을에 도착하니 마을 입구에서 눈에 익은 이름의 팻말이 떡하니 마중을 한다.
아니 이게 웬 팻말여?
언제 두레미는 남편도 모르게 여기다 농장을 만들었어~
그러게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더니 엇저녁 꿈이 현실이 되었네?
우리는 농담을 하며 요상한 마음으로다가 내려 사진기에 담았다.
아마 서울 강북에서 큰학원을 하던 친구가 고향으로 귀농하였다더니 정착하며 만든 농장이름을 이렇게 지었나보다.
새로운 행정구역의 표지판은 떨어져 흙먼지를 뒤집어쓴체 바닥에 있고
버스 정류장엔 오후의 햇살만 그득하다.
집에 도착하니 엄니는 금방 쑤어놓은듯 아직 온기가 있는 도토리묵을 식으라고
찬물에 띄워놓고 어딜 가셨는지 보이지 않고 가을을 맞은 엄니의 꽃밭에 꽃들만이 반겨준다.
여름꽃은 거의 시들어버리고 건조하고 선선한 날씨에 더 잘 자라는 메리골드가 화사하다.
엄니 방에 주렁주렁 갈린 사진 각꾸(곽)들~
그속에 우리 가족사가 담겨있고 추억이 있는 우리를 과거로 데려다주는 타임머신같은
사진들이 걸려 있다.
다 걸지 못한 사진 각꾸들은 여기저기 방안의 가구들이 이고 앉았다.
풋풋했던 우리들 한 때의 모습과 지금 내 나이보다 훨씬 젊으셨던 엄니,
거침없이 하이킥을 하시는 합리적이고 진취적이신 엄니의 활달함을 많이 닮지 않았다. 자식들은.
활달하신 엄니에 기가 죽었을지,ㅎㅎ 니면 온화하셨던 아버지의 영향이 더 컸을지?
자식들과는 달리 사위들은 활달하고 진취적이신 장모님을 당신이 최고라고 손가락을 치켜 세운다.
도대체 묵을 쒀 담가 놓고 어딜 가신겨?ㅎㅎ
언제나 말없이 빙긋이 웃음으로 표현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으로 우리들 마음속에 기억되는 아버지 모습에서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많은 생각에 잠겼다.
고난이라 할 만치 고생을 하신 아버지의 삶에서도 이렇게 온화하고
편안한 모습을 가지실 수 있었던 아버지,
여려서 고생을 달고 살으셨다는 아버지의 이마가 참으로 넓고 반듯하신
모습에 눈길이 멈추어졌다.
아버지한테 혼난 기억이 거의 없고 화내시던 모습 또한 거의 없으며
남들에게 혀끝을 구부려 얘기하는것을 철칙으로 삼고 사셨던 모습에서
말없이 자신을 지켜내며 말 수가 적은 만큼 안으로 마음의 평수를
넓히셨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니 핸드폰에 전화를 거니 당신이최고야~ 당신이 최고야~하는 폰벨 소리만 울려 퍼질 뿐 전화를 안받으시네.
으이구 어딜 가셔서 전화도 안받으시고 계신댜~
우리끼리 고구마 밭에나가서 고구마나 캐자고 호미를 찾는데 아무리 찾아도 못찾겠다 꾀꼬리~꾀꼬리~
삽이라도 가지고 가자고 삽을 찾아도 못찾겠다.
다시 전화를 하고 또 하니 그제서야 받으시는데 니들 오면 점심 해주려고 지달리다가 배고파서 경로당에 와서
점심 먹고 화투한판치고 있다. 나 치던 판 끝나고 갈팅게 먼저 가서 고구마 캐고 있으라고~오. 오케이 엄니~ㅎ
고구마 두자루, 태풍이 잎을 다 떨구고 갔다는 단풍든 깻잎도 조금 따고 고구마 순도 따고 늙은 호박, 애호박, 풋콩,
참깨, 텃밭에서 김장 채소 솎아서 한상자 단감나무에서 단감 한 상자 추석 때 들어온 선물 상자들 일년 먹을 고추 한
자루 해서 자동차가 작아졌다.
아이쿠 팔십이 다되신 노인이 아직도 자식들 입으로 들어가는 재미를 놓지 못하고 불편한 몸을 이끌고 먹거리
농사를 놓지 못하신다.
자식들 주는 재미에 펴진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다.
나는 이런 재미로 산다. 얼마나 갈지 모르지만 말여~
차안 가득 싣고 구석구석 채워넣고 시집간 딸이 친정에 가면 아홉자루를 가져온다는 속담이 무색하게 실었다.
이쁜 도둑이라는 딸이 다섯이나 되는 친정 엄니는 갈퀴같은 손으로 파고 또 파실것이다. 몸이 성한날에는~
조금만 줄이시라고 신신 당부를 하면 그러마고 대답은 하시지만 도루아미 타불.
참 사람이 산다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 마음의 간격과 차이를 어떻게 조절해야 할지 고민이다.
엄니의 행복한 일상을 함부로 뺏기도 말리기도 어려운 노릇이다.
부디 엄니의 소원이 이루어지시길 기원할 뿐입니다.
맨날 맨날 행복하시고 주무시다 편안히 이승 떠나실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