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처럼 바람처럼

불편한 진리

두레미 2012. 9. 18. 17:15

 

 

 

주말 아침 지난 밤 꿈자리가 뒤숭숭한것이 숙면을 취하지 못했었나보다.

자전거를 타고 신륵사를 둘러 보기로 한날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를 하면서 서로가

깜빡깜빡 하면서 농을 주고 받았다.

치매 전조 증상이라고~ 큰일 났다고 농담을 하면서도 왠지 몸도 마음도 가볍지가 않았다.

그래도 늘상 다니던 길이고 몇번을 가봤던 길이기에 마음에 조심을 명심하며 집을 나섰다.

집에서 출발하여 신도림역까지 한오분정도의 페달 밟기에 허벅지가 뻑뻑해지는것이

영 불편한데 급행전철이 마침 들어오고 있어 자전거를 들고 계단을 달리듯 올라 전철을 탔다.

용산역에 내리니 다리가 후들후들~ 밤새 몸의 부기가 빠지면서 몸의 신진 대사가 활발해지니

금방 금방 방광이 차 오르고 중추신경을 자극하니 화장시을 향하는 발걸음이 빨라진다.

급한 내가 먼저 다녀오고 바통을 남편에게 넘겨주었더니 큰 일을 봐야겠다고~ 그러시구랴~

시원하고 가벼워진 몸을 이리저리 돌리며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데 조그마하지만 깔끔하고

당차보이시는 할머니 한분이 까만 봉지와 손에 무엇인가를 들고 바삐 오가는 사람들에게 손짓

몸짓에 표정연기를 해가며 말씀을 하시니 한 가족 자매인듯한 사람들이 난처한듯 하다가 돈

천원을 건네주니 허리를 굽신굽신하며 고맙다고 한다.

생김새 인상으로 봐서나 행색으로 봐서 구걸하실 노인 같아보이지 않는 할머니가 이상타 했다.

받은 돈을 챙겨 까만 봉지에 넣으시는걸 보고 나는 하던 몸풀기를 계속하고 있는데 갑자기 등뒤에서

사모님 사모님~ 하고 부르시는 할머니 목소리가 섬뜩 할 정도로 힘이들었다.

돌아보니 손에 비닐로 허접하게 포장한 모나미 까만색 볼펜네개를 내밀며 하나 팔아달라고 하신다.

할머니 사정이야 그렇지만 볼펜을 살만한 잔돈도 없고 필요치도 않은 물건이니 필요 없다고 했다.

그러면 싸온 김밥이라도 한개 먹게 달라신다.  이건 뭐, 김밥도 없는데 신 자두 두어개 도마토 한개를

반으로 갈라 먹으려고 칼집을 내어 넣어온것이 전부인데 김밥이라도 한개 달라니 김밥도 없다고

그러면 돈 천원이라도 달란다.   돈 천원은 가지고 다니지도 않는데 나들이 갈 때 돈은 비상금으로

만원짜리 몇장에 카드를 소지 하는지라 천원은 더 더군다나.

천원도 없으니 참 난감한데 할머니는 눈물을꾹꾹 찍어내는 시늉을 하시면서 사모님은 지금 행복하시잖아요?

나는 자식도 없고 돈도  없어 이렇게 늙어 고생을 한답니다. 그러니 천원짜리  한장이라도 달라시며 손을 내미신다.

그러는 할머니의 행색을 자세히 보니 배낭도 없이 손에 든 볼펜 네자루가 전부이고 까만 비닐 봉지는

아까 받은 돈 천원을 넣은 빈 봉지다.  볼펜을 미끼로 상습적으로 구걸을 하시는 할머니 같았다.

내 생각이 잘못 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진정성이 없어보이는 할머니께 만원을 드리기는 솔직히 싫었다.

그래도 노인이시고 그런 할머니를 대하기란 여간 곤란하고 난처한것이 아니었다.

볼일 보러 간 남편은 오지도 않고 난감하기 그지 없어 할 수없이 할머니께 다른분에게 가보시라고 했다.

그랫더니 갑자기 돌변하신 할머니의 말투는 기세가 등등한 목소리로 너 말 잘했다.

너가 지금 행복하다고 그 행복이 영원할 것 같으냐~ 행복한날이 있으면 불행한 날도 있는 법이야.

네가 지금 행복하다고 언제까지나 행복할줄아나본데 어림없어. 행복이 있으면 불행도 있는 법이야.

나도 예전엔 행복햇었지 내내 행복했었어 내 나이 여든 일곱까지 행복하게 잘먹고 잘 살았어.

내가 KBS, MBC, SBS 방송국 다 다니며 노래 부르고 가요무대도 나가고 했었어.  나 잘나가던 사람이야.

행복은 영원한게 아니야 명심해라.  내가 돈이 없어서 너한테 이러는 줄 아니?  나 돈 많아~

지금 내 주머니에 당장 몇 백만원 있어. 그냥 놀기 심심해서 그러는 것이지 내가 돈이 없어서 그러는 줄 아니?

너같은 것들 만나서 얘기 해 주고 싶어서 너같은것들 만나러 다니는 거야. 알았어~

내 주위를 빙빙 돌며 한참을 퍼부어 대고도 분이 안 풀리시는지 뒤를 돌아돌아 보며 다른사람에게로 가서

또 볼펜을 내밀며 팔아달라시니 지나가던 아저씨 고개를 흔들고그냥 지나가신다.

다른 사람도 근데 그 사람들 한테는 아무 말도 못하시는지 않하시는지 순순히 물러나시면서 나한테는 어쩌자고

그렇개 질기게 물고 늘어지셨는지 참 하루 내내 마음이 복잡했다.

내가 정말 그 할머니의 아픈 자존심을 건드리는 잘못을 했을까. 생각하면 죄책감이 들고 아니야 상습적으로

구걸을 하시는 할머니야 하면 조금 마음이 가벼워졌다가 이도 저도 다 내 옹졸한 탓이라고 생각하면서

내 마음을 이렇게 저렇게 갈고 또 닦으며 가다듬은것이 그래 할머니 말씀처럼 행과 불행은 파도처럼 밀려왔다 밀려

가는것이라는 깨달음을 주시려고 나타나신 불편한 진리의 화신이라고 생각하자.

내가 앞으로 살아가는데 내내 명심하게 될 아주 유익한 교훈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그 할머니가 진정으로 노여움을 푸시고 행복하시기를

세상에 대한 사람들에 대한 노여움을 푸실 수 있기를 바란다.  

 

앞으로는 외출을 할때 돈 천원정도는 준비를 하고 다녀야 할 것 같다.

더 이상 그런 교훈을 그런 방식으로 배우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