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레길 봄 나들이
삐그덕 덜커덩 ~
이 소리는 우마차 가는 소리가 아니라 내 무릎이 이상 신호를 보내는 소리다.
체력이 떨어지니 온몸의 저항력도 떨어져서 구석구석 이상 신호가 오기
시작하는데 제일 먼저 뼈 마디마디 관절에서부터 삐그덕거리고 덜커덩거리며
부드럽게 움직이던 관절들이 뻑뻑한게 제 살 깍는 신호음이 들리기시작한다.
쭈그려 앉기가 어렵고 오르내리는 경사가 부담스러워서 계단을 오르기도
겁이나고 산을 오르고 싶어도 오를 수가 없으니 창살 없는 감옥이 따로 없다.
병원에서도 퇴행성이라는 단서가 붙여지고 조심하고 아껴쓰는 수 밖에는 별
도리가 없다는 처방이 내려졌다.
어쩌면 남의 다리를 하나 더 빌려 써야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아이쿠나
정말이지 아끼고 또 아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작년 이맘때쯤 빡빡한 일상에서 벗어나 산림욕이나 하자며 떠났던 축령산 산행길
마지막 내리막길이 미끄러운 흙길로 어찌나 가파르던지 다리에 잔뜩 힘을 주고
내려오다가 무릎이 삐끗하면서 아프기 시작한 무릎이 이내 부었다 내리기를 반복
하면서 좀체 낫지를 않더니 일년이 다 되어가니 증상들도 대부분 사라지고 일상
생활에 큰 무리가 없어 자전거를 열심히 타고 근력강화 운동을 꾸준히 했었다.
이제는 시험을 한번 해보자고 둘레길을 한번 걸어보자며 나섰다.
야트막한 경사를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다리에 힘도 기르고 조용한 무릎의 속내도
알아볼겸 집을 나섰다.
화계사를 시작으로 흰구름 길에서 우이동쪽으로 방학동을 이어 도봉동 옛길구간
입구까지 걸었다.
막 피기시작한 나뭇잎들이 햇빛에 반짝반짝 빛이나고 빛나는 초록이 눈부신 숲길은
황홀했다.
수려한 활엽수의 훤칠한 키와 매끈한 몸매에 반하고 사이사이 팔랑이는 잡목들의
이파리에 눈길을 빼앗기며 감탄사와 탄성을 연발 하면서 무릎에 대한 조바심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이리보고 저리보고 쪼그리고 앉아 풀꽃을 찾아보며 나는 이미 이성을
잃고 숲에 취해 있었다.
좋아라하는 나를 보면서 남편도 덩달아 기분이 좋은지 내가 하는 말에 장단을 맞추고
우리는 나오기를 참 잘 했다고 시작한 김에 둘레길 완주를 해보자며 맞장구를 쳤다.
참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수술이 이쁘다며 한참씩 쳐다보는 마눌을 재촉하지도 않고
기다려주고 구부러짐없이 미끈하게 자란 포뿌라 나무에 넋을 잃고 쳐다보기도 하고
잎사귀가 넓은 떡갈나무를 쳐다보느라 뒤로 넘어질뻔 하기도 하면서 이건 굴참나무
이건 떡갈나무 이건 아마 졸참나무일거야~
아니 근데 포뿌라 미류나무가 이산에 자라고있을까?
아마 국립공원이 되기전 사람들이 살고있지 않았을까 추측도 해보며 푸른빛을 발산하는
것 같은 현호색 무리를쳐다보다가 그 빛에 빠져들것 같기도 하고 길섶 바위밑에서
캥거루 새끼가 얼굴을 내민것 처럼 빼꼼히 피어난 애기 붓꽃과 한참을 마주하다 일어나고
이 넓은 잎이 떨어져 있는 걸 보면 이근방 어딘가에 산 목련이 있겠다.
이거봐봐~ 이 낙엽이 큰게 목련 잎이야.
참나무 잎과는 비교도 안되게 크잖어.
아 여기 있다. 그러면 그렇지.
꽃은 벌써 다지고 잎이 다 났네~
이건 오리봉나무지 우리는 오리봉나무라고 불렀는데 물오리나무라네.
그려 그럼 이건 물오리나무 그럼 산오리나무도 있을까?ㅎㅎ
이건 모간주 나무다.
소 코뚜레를 할 때 쓰는 나무. 우리나라 야산에 자생하는 나무라지?
생나무를 불에 구우면 척척 휘어져서 코뚜레를 만들 때 쓰는 나무야.
아이구 그려 이각시야 그런 얘기 누구한테 해봐 누가 들어주나~ 나나하니까 들어주지.
산벗 조차도 다 지고 연 철쭉도 거의다 지고 간간히 내가 철쭉입니다 하고 있다.
늦게 피는 산 복숭아 꽃잎이 바람에 날려서 벤취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어떤 남녀의
머리위로 흩날리는게 한폭의 그림같았다.
맑은 계곡물은 바위를 만나 휘돌아치며 쏟아져내리고 하얗게 분말을 일으키며 정취를 더해준다.
오며가며 만나는 사람들의 얘기도 다정하고 모습도 다정하고 혼자서 여유롭게 또는 생각에 잠겨서
한주동안의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며 어려운 사업에 대한 스트레스를 풀기도하고 친구들과 밀린
얘기도 나누며 넓은 계곡에서는 어떤회사의 M.T로 시끌벅적하기도하다.
어디선가 들리는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아대는 소리는 딱따구르르르 딱따구르르르.....
아련하게 들려오고 가끔씩 들려오는 숫꿩은 꿩꿩대며 암꿩에게 신호를 보낸다.
어떤이는 이준 열사의 묘를 물어가고 어떤이는 연산군묘를 물어가고 어떤이는 방학동 은행나무를
물어가기도 하고 제각각 갈길을 찾아 가는 사람들이 붐비는 둘레길엔 역사도 있고 사람들의 얘기를
기억하는 나무들도 있고 추억을 찍어놓고간 발자국으로 닳고닳은 길이 나 있다.
잠시 시원한 나무그늘에 앉아 쉬고 있을 때 맞은편에 앉아 온몸으로 얘기를 하며 깔깔대며 웃으시는
어르신들의 말씨가 예사롭지가 않다.
고래서 말이야 궈온사~님이 말이야.
얘기속 주인공의 표정과 몸짓을 흉내내면서 재밌게 얘기를 주고받으시는 어르신들이 하도재미있어서
"고향이 어디메세요?"
"우리요?"
"이북이야요. 다 한 고향이래요."
"아~ 그러시군요. 어쩐지 말씀하시는게 그러신것 같았어요.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우리 나이 많아요."
"한 칠십 넘으셨어요?"
"한참 넘었시요. 팔십이 다 됐시요.ㅎㅎㅎ"
"그렇게 안 보이세요. 참 젊어보이시고 활기차 보이세요. "
"고마와요. 좋은시간 보내세요."
"예. 어르신들도 좋은 길 되세요. 참 보기 좋으세요."
잠깐 쉬어가는 벤치에서 나누는 대화가 정겨웁고 길을 묻는 물음에 자상하고
공손한 말씨로 예상시간과 지형까기 설명을 해주는 너무나 겸손하고 순수해서
얘기를 듣는 우리까지 맑아지는 것 같은 부부를 뒤로하고 무수골을따라
도봉역으로 내려왔다.
흥분이 가라앉고 제 정신이들고나니 피로가 엄습해온다.
집에오니 이이고 다리야 무릎을 보호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힘을 쓴 엉덩이 근육과
종아리와 허벅지 근육들이 일제히 반란을 일으키고 무릎 관절은 경고장을 날린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무릎님~!
따뜻한 핫팩 받아주세요.
맛사지 받아주세요. 무릎님
제발 그만 화 푸시어요.
오늘 조금은 누그러진듯 하다.ㅎㅎ
앞으로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할 일이다.
화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