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처럼 바람처럼

민노인의 무덤에서

두레미 2010. 11. 20. 10:56

 

 

 

 

노인의 이름은 창후(昌厚)이고, 성은 민씨다. 나이 82세에 죽었다.

젊어서는 충청우도(忠淸右道)에 살았고, 늙어서는 강화도에 살았다.

계미년(1763)에 추은(推恩)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의 품계를 얻어

첨추(僉樞)에 임명되었고, 그 덕분에 그 아내에게 숙부인(淑夫人)을

증직(贈職)하였다.  아들 하나에 손자 셋을 두었고, 그 장손 광해(光

海)를 내게 맡겼다.

노인은 나와 수십 년 동안 교유 하였다. 평생동안 배운 점술. 지리 .

지리 . 택일(澤日) . 녹명(祿命)을 맞추는 재주를 나를 위해 빠짐없이

말해주었는데, 의롭지 않은 일에는 말이 미치지 않았다. 남을 위해

장지(裝地)를 구해주되, 귀천을 따지지 않고 가진 재주를 다 발휘하

였다.  재물이 없어 군색하였다. 남이 복채를 주면 기뻐하였으나 약속

을 어기고 주지 않아도 화내는 법이 없었다.

노인은 얼굴이 길쭉했고, 담소를 잘했다. 경성에 들어올 때면 언제나

내 집에 머물렀고, 나를 보면 늘 즐거워하였다.

갑신년(1764)가을, 내가 마침 영남에 나들이할 때 노인은 배를 타고

한강을 거슬러 올라와 배웅하였다. 노인이 말했다.

"늙고 병들어서 이제 다시는 뵙지 못하겠군요."

그 다음해 가을, 내가 또 영남에 머무르게 되었을 때 노인이 죽었다.

나는 노인이 내게 보인 도타운 정에 보답하기 위해 노인의 장지(裝誌)

를 짓는다.  

 

 

 

안대회님께서 엮어내신

고전 산문 산책 중에  한편이다.

절세(絶世)의 재사였던 심익운(沈翼雲)과 서민인 민노인과의 신분과

나이를 초월하는 교유에서 느껴지는 가슴 뭉클함이 두꺼운 책 한권의

감동과 맞먹는다.

평소 담소를 즐기며 마음을 나누던 심익운에게 한강을 거슬러 올라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민노인의 마음과 그런 노인을 위해 서민에게는

지어지지 않는 장지를 지어 넣어주는 심익운의 노인에 대한 마음이 따

듯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