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처럼 바람처럼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나 가지.
두레미
2010. 11. 4. 15:14
십여년 전 지인들과 여행을 갔었습니다.
아침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는데 할머니 한 분이 들어어시더니
현미녹차를 시켜놓으십니다.
얼핏보기에 궁색해 보이셨지만 찬찬히 볼 수록 흐트러짐없이 깔끔하신
옷 매무새며 몸 매무새에서 어떤 고고함이 느껴졌습니다.
손이 곱으신듯 앙상한 손을 비비시다가 담그어진 차 티백을
꺼내 올리시더니 가느다랗게 떨리는 손끝으로 티백을 찢기 시작하십니다.
모여앉아 차를 마시던 우리들은 갸우뚱하면서 할머니를 바라보았습니다.
티백을 찢더니 녹차잎과 현미가루를 찻잔에 털어넣습니다.
아니~ 저할머니~
차 마실 줄을 모르시나?
우리들은 염려 반 안타까움 반 바라보다가 결국 한사람이 조심스럽게
"할머니 그 티백은 찢지않고 그냥 차를 욹워 드셔야 되는데요."
"예 그래도 되지만 난 일부러 같이 먹으려고 뜯었어요. 차물만 욹워 먹어도
좋지만 함께 먹어도 현미의 고소한 맛도 좋고 녹차잎의 쌉싸레한 맛과 씹을수록
입에 오래 남는향이 참 좋아요."
하시면서 깨끗한 창호지 처럼 맑게 웃으십니다.
아이쿠 이런 가만있으면 중간이나 가지.
우리는 그 할머니 발걸음보다 더 살금살금
찻집을 나섰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