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처럼 바람처럼

오늘은 내 마음을 기웠다.

두레미 2009. 10. 30. 00:20

 

 

 

어머니두 커피 드시겠어요?

좋지. 저녘때 마시면 밤잠에 지장이 있어두

아침에 한잔 마시는것은 좋지.

이렇게 고부가 모닝커피를 마셨다.

다른때 같으면 일찍이 복지관으로 아침운동

나가셨을 시간에 커피를 마시며 어머님의

모노 드라마가 시작되었다,

예. 그렇지요.

그때는 다 그랬지요.

맞장구를 쳐 드리면서도 마음은 콩밭에 있다.

오늘 모처럼 남편의 귀가가 늦는 날이라서

낮 동안 대전 친구를 만나고 올까 생각 중이었는데

어머님의 모노드라마가 시작된것이다.

남편은 그럴때면 한두번 들은것도 아니고 그만

하시라고 말하고 일어서라고 하지만 그 진지함을

겪어보지 않은사람은 모른다.

족히 한시간은 지나야 끝이나는 드라마는 오늘도 

시간을 다 채우고서야 선선히 일어나 복지관으로

향하신다.

마음속으로만 계획했던 오늘의 일정은 수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방으로 들어와 여기 저기 뒤적이며 일거리를 찾다가 

양말 서랍에서 멈추었다.

무슨 양말이 이렇게 많은가.

뒤죽박죽 담겨있는 남편의 양말 서랍과 내 양말 서랍이

꼭 내 마음 같다.

아직 뜯지도 않은 양말과 목이 늘어나 헤벌어진 늙은 양말들

여름 양말과 겨울 양말 스포츠 양말들이 뒤섞여 있다.

계절별로 용도 별로 구분해 정리를 한다.

내 양말 차례.

지난 겨울에 신었던 덧신 두 켤레가 작은 구멍이 난채로 가지런히

포개져 있다.

다른 곳은 멀쩡한데 새끼 발가락과 엄지 발가락끝에 구멍이 난채로  

버릴려고 골라 놓은 양말들을 모아놓고 덧신도 함께 담으려다

목이 늘어난 양말은 신기 어렵지만 작은 구멍은 기워서 신어볼까?

덧대도 될만한 양말을 골라놓고 이리저리 눈 집작을 해본다.

가위로 양말을 자르고 알맞은 크기로 모양을 내고 덧신을 기운다.

양말을 기워본적이 얼마만인가.

어릴적 등잔불밑에서 엄마와 함께 겨울이면 양말을 기웠었지.

발가락 끝에 난 구멍을 기우기란 쉽지 않았었다.

헌 양말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두었다가 성한곳을 골라 구멍난

양말을 기우고 또 기워서 신었었다.

지금은 양말을 기워 신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그리 쉽게 떨어지는

양말도 아마 없을까 아니면 옛날 아이들처럼 밖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이 없는것일까.

나는 덧신깁느라 삼매경에 빠져 구멍난 오늘의 내 계획에 대한

서운함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다 기워서 신어보고 다시 가지런히 포개 놓으며 내 마음도 함께

포개었다.

나는 오늘 덧신을 기운것이 아니라 구멍난 내 마음을 기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