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레미 2008. 11. 6. 09:31

 

 

 

 

 일교차가 큰 요즈음 한낮의 햇살이 참 따듯합니다.

여름이면 엄두도 못냈을 한낮의 나들이가 상쾌하기까지 하구요.

그래서 요며칠 안양천 걷기를 했습니다.

따스하게 느껴지는 햇살도 좋구 얇은 옷깃에 스치는 바람도 좋구요.

날마다 변해가는 나뭇잎파리들 은빛 억새도 하얗게 꽃을 피워 씨앗을

날려 보낼 채비를 하고 무겁게 고개 숙여 치렁거리던 풀씨들도 씨앗을

다 털어버리고 빈 모가지만 썰렁합니다.

갈대 숲을 지나는 바람소리도 이젠 바스락 거립니다.

나가는 길엔 빠른 걸음으로 걷다가 돌아오는길엔 천천히 여유롭게 바람

소리 새소리 부서져 내리는 햇살을 즐기며 찬찬히 생각들을 합니다.

길고도 짧고 모질면서도 참 아름다운것이 사람살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어렵고 힘든시간도 지나고 나면 추억으로 기억되고 그리움으로 아름다움

으로 기억되기도 하고 그때는 몰랐던 것을 지금에야깨닫기도 하고 지금

은 추억으로만 남아있는 마음도 있지요.

이삭을 떨구고 꼿꼿하게 서잇는 피 모가지를 보며 옛 생각이 납니다.

가을 추수가 끝나고 날씨가 쌀쌀해면 초가집 지붕을 새로 이어야 해서

날마다 나래(이엉)를 엮어 모아놓습니다.

나래 엮을때면 아버지 옆에 앉아 짚을 한줌씩 집어 섬겨 줍니다.

많아도 안되고 너무 적어도 안되는 적당한 양이 되어야 이엉이 고르고

편편하게 잘 엮어집니다.

그 짚의 양을 참 잘 맞추어 놓았던 나를 아버지는 이엉을 엮을때면 으례

두레미가 짚을 섬겨라 하시면 아버지 옆에서 짚섬기는일이 좋았습니다.

아버지에게서 나는 특유의 냄새가 참 좋았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 땀냄새였겠지만 그 냄새가 달큼하게 느껴졌을까요.

어두워질때까지 이엉을 엮고 저녘을 먹으면 찬바람에 문단속을 일찍합니다.

대문을 닫으려 가면 대문앞에 시커멓게 우뚝 서있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아버지 승수 또 왔어요.'

'데리고 들어와라.'

우리보다 키도크고 나이도 세네살은 많았을 그 애를 우리는 언제나 그냥

승수라 불렀습니다.

큰 집에 맡겨진 승수는 고달픈 큰 어머니의 화풀이 대상이었습니다.

화가나면 손에 잡히는대로 아무거이나 집어던진다는 큰어머니 그 시절엔

너나 없이 가난하고 고달팠습니다.

그럴때면 승수는 우리집 대문간에 서서 발견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승수 못지않게 어려운 시절을 보내신 아버지는 그런 승수를 언제나 따듯하게

대해 주셨습니다.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잠을 자고 그애를 더 따듯한 곳에 누이고는 아버지는

항상 말씀 하셨어요.

'승수 오늘저녘 불알 늘어지겠네.'

우리집에서 묵어가는사람은 승수뿐이 아니었습니다.

안골 박물장수 아주머니, 대 소쿠리장수 아주머니. 경상도 꿀장수 아짐, 항아리

장수네 가족,어린애를 업고 다니는 거지 아짐등 참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세상이 좋아지면서 차츰 떠돌이 장사도 없어지고 거지도 없어졌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떠나면서 은혜를 꼭 갚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찾아오는 사람은 없었지요.

승수도 더 나이가 들어 열 다섯인가 여섯이가 되던해 큰집을 떠나버렸습니다.

더벅머리에 항상 눈을 내리뜨고 두손을 만지작거리며 우두커니 서있던 승수

우리가 아무리 놀려대도 말대꾸 한번 안하고 묵묵히 아버지 옆에서 짚을 섬겨주던 승수

아버지가 타이르면 눈물만 뚝뚝 흘리던 승수.

어느 하늘아래 살고나 있을까?

가을이되고 찬 바람이 불면 생각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