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
올 해는 한여름의 추석이다.
연휴가 짧아도 고향에 갈사람은 가고 올 사람은 온다.
해마다 맞이하고 해먹는 음식도 비슷하지만 명절에 먹는 음식은
그래두 분위기와 맛이 다르다.
더운날씨에 가족이 둘러앉아 송편을 빚고 선풍기로 땀을 식히며
아직은 단맛이 덜하지만 시원한 과일로 목을 축이며 음식을 장만
하고 함께 맛을보며 그렇게 한가족으로 명절을 보낸다.
갈 수록 집에서 먹는 음식보다는 밖에서 음식을 먹는일이 일상화
되어지는 요즘이지만 그래도 명절만큼은 집에서 음식을 장만하고
먹으며 한 가족이 될 수있는 유일한 행사다.
예전처럼 며칠씩 묵어지내거나 손님다니는일이 없어지고 바빠진
일상을 핑게로 하루 이틀이 고작이고 각기 제 자리를 찾아 흩어진다.
우리만 해도 아들은 군에가고 조카녀석은 수험생이라고 두문 불출
이니 어른들만의 명절이 단촐하다못해 썰렁한 분위기다.
아침 상을 물리고 나니 갈사람은 가고 남은 가족은 제 각기 자기방
으로 들어가고 마루에는 아침나절의 햇살만이 가득하다.
한가한 오후가 될것같다.
설겆이를 끝내고 돌아서는데 탱감이 제안을 한다.
"자전거타고 한강에나 나깁시다."
"그래도 될까"
"오늘은 끝났어 내일이라면 몰라도"
그렇다면 좋지요. 음식 정리를 해놓고 자전거를 끌고 한강을 나갔다.
아직은 이른듯한 시간에 한강은 밝은 햇살에 시원한 바람으로 가득하다.
바람을 가르며 거슬러 오르다 양재천으로 거슬러 갔다.
양재천 초입은 강남구이고 타워팰리스를 지나면 그다음은 서초구 더
거슬러 올라가면 경기도 과천이다.
도심의 한가운데 자연 상태를 거의 유지하고있는 천변은 물도 맑고
우거진 풀들로 풀내음이 향긋하다.
철따라 피는 야생화가 있고 군데군데 사람들의 손길로 가꾸어진 작은
텃밭들이 있다.
화초처럼 가꾸어진 토란이며 아주까리 고구마 열무에 대파 무성한 호박
덩굴이 풀들과 어우러져 풀밭인지 텃밭인지 함께하고있다.
팔월초 아들이 군에가고 마음이 허할때 자전거를 타고 들어왔었는데 한
여름 천변에 호박덩굴이 어찌나 무성하던지 저 호박잎을 따다가 찜솥에
쪄서 매운 풋고추찜 간장으로 쌈 싸먹으면 맛나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때 생각이나서 탱감한테 그애기를 했다.
그랬더니 탱감은 당장 실천을 하자고 이따가 마트에서 비닐봉지를 사서
돌아오는길에 호박잎을 따오잔다.
천을 거스르며 여기도 호박잎 또 여기도 여기도 좋고 저기도좋고 여기서
딸까 저기서 딸까 호박잎 좋은곳을 점찍으며 거스르기를 했다.
양재천을 거슬러 과천 중앙공원 편의점에서 간단히 간식을 먹고 정말로
비닐 봉지를 20원에 구입해서 출발했다.
천이란 평탄하다고 해도 거스를때보다 내려올때가 한결 수월하다.
역시 내려오는길은 거저먹기라며 여유롭게 내려오다가 호박덩굴이
보인다.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고 우리는 접근하기 좋은 곳에서 자전거를 멈추고
호박 잎을 따기 시작했다.
백주 대낮에 호박잎 서리를 한 것이다.
명절날 그것도 햇볕이 쨍쨍한 한낮이라서인지 오가는 사람들이 거의없다.
그래도 마음이 한편 캥긴다.
부드럽고 연한것으로 한덩굴에서 한두잎씩 애호박은 추석전에 따갔는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달린 호박이 하나도 없다는것이 이상하게 마음이 편하다.
한 6~7분 땄을까 금방 한봉지가 된다.
봉지를 자전거에 매고 집에와서 풀어보니 여리고 싱싱한 호박잎에 벌써
군침이돈다.
껍질을 까고 씻어 찜통에 간장도 찌고 호박잎도 찌고 그렇게 저녘밥에
호박잎쌈을 먹었다.
어느님네 호박 덩굴인지 덕분에 호박잎쌈으로 저녁을 만찬처럼 먹으며
서리해 온것이라서 더 맛있네벼.
그렇게 올 추석엔 호박잎을 서리해 먹었다.
죄송합니다 .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