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도 팔월의 땡볕 같은 요즘
지난주 화요일(5일) 점심때가 조금 지나 연락이왔다.
거북이 부친상. 장례식장은 부여 장례식장. 내일 발인.
거북이 인물좋고 마음씨 넉넉한 친구 군에 갔다와서
잠시 짬이 있는시간 결혼할 약혼녀도 있고 친구들도
결혼해서 집들이하고 이삿짐 나르고 그 날도 친구의
이사를 도와주던 거북이, 그때만해도 이삿짐 센터나
사다리차같은 장비가 없던시절 밧줄로 무거운 짐들을
묶어 끌어올리던 시절이었다.
이리부딛히고 저리부딛히고 새 가구들은 여기저기
흠집이나도 웬만하면 타박이없던 시절 서로도와가며
이사를 햇었다.
그런데 그 날 거북이친구의 운명이 바뀌어 버렸다.
이사를 돕던 거북이 그만 2층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나고
겉으로 큰 외상은 없었지만 허리를 다쳐 하반신 마비가
오고 약혼녀와 이별을 결심하고 그의 또다른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
장애인으로 다시 태어난 그가 다시 정상인의 마음으로 돌아
오던길을 어찌 다 설명 할 수있을까.
그야 말로 우여곡절을 다겪고 이제는 평정심을 되찾아 신앙
생활도 열심히하고 친구들 우정의 다리 역할을 톡톡히 하고있다.
고향에 터를 잡아 마음의 안정을 도와준친구들 그의 손과 발이
되어준 고향 친구들 고향을 찾으면 꼭 찾아가는 친구들이 잇었기에
다시 설 수 있었을것이다.
참으로 고맙고 고마운 친구들.
고향에 자리를 잡고 부모님 가까이서 홀로 자립을 원했던 친구는
차츰 자리를 잡아갔고 부모님도 친구들도 새로운 그에게 익숙해 졌다.
평온을 찾았나 했더니 그의 아버지께서 중풍으로 쓰러지시고 기나긴
투병이 이어졌다.
칠남매 모두가 장성하여 가정을 꾸렸지만 그런 아버지를 책임지고 맡아
병간호할 자식은 선뜻 나서지 않는다.
결국 시설에 맡겨지시고 그의 고민이 깊어졌다.
시설을 찾아 매일 면회를 다니던 그가 결심을 했다.
내가 아버지를 모시자.
읍내에 조그만 아파트를 얻어 아버지를 모셨다.
주변에서 만류를 했지만 그의 뜻을 접게 할 수는 없었다.
일체 도우미의 손길마저 거부한채 아버지를 모시는 친구에게 우리는
딱히 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젠 운명이 얼마남지 않았음을 감지한 친구 고향집을 고쳐 고향집으로
아버지를 모시려던 친구는 집고치기 공사를 막 시작하자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장례식장을 찾아가니 벌써 친구들이 많이찾아와 조문을 하고 모여있었다.
더운 여름이면 혼자서도 욕창으로고생하던 친구가 아버지를 모시고부터는
더 크고 깊은 욕창으로 고생을 했다. 그날도 쟁반만한 욕층을 달고 앉아있는
친구의 얼굴은 여늬 때와 같이 덤덤하고 평온해 보이기까지 했다.
칠남매의 지인들로 밀려드는 조문객들은 발디딜 틈이 없었다.
친구의 희생과 가족애로 장례식장의 분위기는 평화롭고 진지했지만 함께했던
우리 친구들의 마음은 만감이 교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