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레미 2008. 6. 20. 12:50

눅눅하긴해도 모처럼 화창한 날

집안 창문을 활짝 열어제끼고 텁텁한 집안 공기를

바꾸어 놓고 김을 들기름 발라 재워놓았다.

날이 궂어지면 꺼내놓기 무섭게 눅눅해지니 여름철엔

김을 맛있게 먹기 어렵다.

그래도 우리집 밥상엔 사철 김 이 빠지지 않는다.

어릴적엔 명절이나 제사때나 들기름 발라 구운 김으로

하얀 쌀밥을 싸먹었었다.

제삿날이 되면 뒷산의 소나무 잎을 꺽어다 솔잎으로

들기름을 발라 아궁이 잿불에 김을 구웠었다.

그 고소하고 바삭한 김밥을 먹고 싶어 졸린 눈을 비벼가며

제사 끝나기만을 기다리던 어린시절 그야말로 젯밥에만 관

심이 있었다.

결혼을 하고 구로동 다세대 3층꼭대기 슬라브 지붕아래 

단칸방에 연탄 아궁이한개 석유곤로를 놓고두 불편함을

모르던 시절 우리는 그때도 김을 구워 통째로놓고 책을 보거나

T.V를 보거나 애기를 하면서도 김을 먹었다.

만 2년동안 정다운만큼 싸움도 많이했고 원인을 알 수없는

유산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아이를 포기하고 마음을 비우자 찾아온 임신과 출산 그리고

어르신들과의 시집살이가 시작됐다.

그때도 김은 어르신들과 함께먹을 수있는 몇가지 안되는 반찬중에

하나였다.

소식에 가리는것이 많으신 어르신들의 식성을 익히고 맞추어 드리기

에 바빴다. 연년생같은 아이들 뒤치닥거리 하면서 하루세끼 꼬박 따

듯한 밥을 드셔야했고 어쩌다 시간이 늦어지거나 노인정에 모시러가지

못하면 꾸지람을 들어야했다.

아이들이 자라고 밥을 먹기 시작하면서는 반찬의 가지수는 더늘어났고

식사의 종류도 늘어났다.

간단히 먹는다는 점심이 어떤때는 식구수대로 만들어야 하는 때도있었다.

어르신들은 밥에 국수 아이들은 자장  탱감은 라면 아이고 가스불 두개가

불이난다.

그럴때마다 김은 우리식구 모두가 함께먹을 수있는 유일한 반찬이 되었다.

차츰 세월이 좋아져서 김도 집에서 굽지않고 구워서 파는 세상이되어 갔지만

우리집에서는 여전히 들기름에 재워 구운김을 먹는다.

아이들이 어릴적엔 김을 굽는 날이면 아이 친구들까지 와서 갓 구운김을 한장씩

들고 다니며 뜯어먹고 뒹굴고 온통 집안은 김가루와 들기름 투성이가되었다.

어느핸가 명절끝에 선물용 등바구니를 가지고 오면 식품과 바꾸어 준다는

백화점의 이벤트에 등바구니를 가지고가서 바꾸어온 김을 식탁에내어놓자

아이들이 대뜸 '이 김 엄마가 구운거 맞아? '  ' 왜?'

' 맛이 다르잖아.'  하면서 맛이 이상하다고 안먹는다.

그뒤로도 몇번을 시도해 보았지만 여전히 아이들의 입맛에 손을 들고 말았다.

결혼을 하고 살림을 하면서 25년 가까이 우리집 밥상에 오르는 김,  김치 다음으로

우리 식구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반찬이다.  

일년이면 아마도 이십여톳은 먹지않을까.

특히 편식이 심한 큰아이의 유일한 반찬 구운김.

오늘 눅눅한 날에 김 한 톳을 재워놓고 지난날을 회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