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처럼 바람처럼

말씀을 줍는노인

두레미 2007. 10. 18. 12:42

내가 결혼 하기전 어느 단체에서 하는 금요강좌가 잇었다.

강좌는 저녘 7시부터 시작해서 약 두 시간정도 하는

시사교양강좌였다.

강의가 시작되기전 몇몇 젊은 사람들은 녹음기를 준비해서

강단앞에 올려놓아 녹음을 했다가 다시듣는다.

그시절만해도 강연들을만한 기회도 장소도 드물었고

지금처럼 TV토론같은 프로그램이 흔치않은시절이었다.

지금이야 평생교육시설도 많이생겼고 많은 대학들도

평생교육원을 개원하고있어서 웬만항 대학원수준의 강의를

들을 수 있지만 그시절은 시민대학이 일빈인에게 가장가까운

교양프로그램이었다.

그시절 시대상황은 물질에서 정신으로 넘어오는 과도기적

상황이아니었나 싶다.

연사들의 면면이그랬고 강의내용도 새대상황에 예민한

내용이 다루어지기도해서 강의를 듣는 사람들은 정치인에서부터

시대정신에 관심있는 고등학생까지 다양했다.

그중에 유독 눈에띄는 노인이있었다.

강의가시작되기전 불편한 몸을 지팡이에 의지하고 

녹음기를 꼭챙겨 단상앞에 올려놓는다.

내가 2년여 강의를 듣는동안 한번도 빠지는날이 없으셨다.

강의가 끝나면 삼삼오오 아니면 그날의 강사분과

뒤풀이도하고 못다한애기를 하기도한다.

연세가 많으신 할아버지는 그런자리에도 종종

함께하셨다.

우리네 젊은사람들은 그분의 열정을 존경하면서도

때로는 불편하신몸으로 지나치신 열정이아닌가 라고도했다.

어느날인가 자리를 함께한 할아버지께 여쭈었다.

연세도있으시고 몸도불편하신데 밤에 강의들으러나오시는게

힘들지 않으세요?

천만에 강의가 있는날을 기다린다고 하신다.

녹음기로녹음해간 강의를 듣고 또듣고 열심히 들으시고

또다시 말씀을 주우러 오신단다.

6.25때 남으로 내려와 남대문시장에서 일을 시작해

어려운 젊은시절을 보내고 이제는 자수성가해서

돈도 벌만큼벌었고 자식들도 모두성장해서 이제는

내 마음의허기를 채우려고 농부가 농사지은 콩을 거두어

마당에 널어 두드리면 튀어나간 콩을 줍듯이 그동안

살기에 바빠 흘려 두었던 마음의 양식을 줍고 싶다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우리들은 할아버지께 고개를 숙였다.

마음의양식이되는 귀한 말씀을 주우시는 할아버지 그분의

말씀이야말로 어느연사의 말씀보다 감동적이었고 우리들 마음속에

영원한 마음의양식으로남아있다.

책을읽거나 신문을 읽거나 좋은 강연을 듣을때마다 나는 아직도

그노인의 말씀이생각나고 농부가 콩을줍듯 말씀을 줍는다.

마음의 양식이되는 말씀을 줍는일 우리는 언제어디서나

누구에게서나 귀하고 마음의양식이되는 말씀을 주울 수 있다.

좋은 말씀을 주워 내마음의 양식이되고 마음이부지가되는

내마음의 양식이 이웃에게도 도움이되는 삶이라면

우리는 행복하지않을까.

나는 내마음 속에 말씀을 줍는 노인을 모셨다.